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내 의식 속에는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또렷하게 남아있다. 대여섯 살쯤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란히 앉아 누가 더 좋으냐고 묻던 장면이다. 나는 엄마도 좋아하고 아빠도 좋아했는데 한 분만을 지목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좋다고 하고 동생은 엄마라 했다. 그러면 엄마는 나에게 여지없이 '콕'하고 군밤을 주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웃으시며 나와 동생을 쓰다듬어 주셨다. 그런 아버지가 좋은 건 사실이지만, 그 나이에도 아버지가 더 힘이 있어 보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날도 두 분은 나와 동생에게 누가 더 좋으냐고 물으셨다. 그 나이에도 매번 아버지만 좋다고 하는 게 걸렸든지 아니면 어머니의 군밤을 피해 볼 요량이었는지 어머니가 더 좋다고 하였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의 무서워진 얼굴을 감당하지 못하고 울어버린 기억이 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었는데 그날은 달랐다. 그 후로 눈치라는 것을 보게 되었고 머리를 굴려야 했던 것 같다. 아마도 내 인생 최초의 고민이 아니었나 싶다.

연년생인 두 아들은 붙임성이 있어서 인사도 잘하고 노래도 유난히 잘 불렀다. 지금이야 위아래 층의 소음으로 사건이 불거지는 세태지만, 그때는 아이들이 피아노 반주를 하며 이중창을 부르면 지나가던 이웃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창문을 활짝 열라고 소리치곤 하였다. 사랑과 관심을 담은 그 소리는 부모 마음마저 설레게 해 주었다. 그 시절에는 이웃들이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누는 시간도 많았다. 어느 날은 옆집 할머니가 우리 큰아들을 칭찬하셨다. 그러자 위층 새댁은 작은아들이 더 괜찮다고 한다. 큰애가 낫다. 작은애다. 두 패가 되어 옥신각신했다.

세월이 흘러 큰아들이 결혼하고 뒤이어 4개월 만에 작은아들도 일가를 이루었다. 이번에는 며느리들을 놓고 편을 가른다. 나름대로 이유가 그럴 싸 하고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최종적으로 내 생각을 알고 싶다며 은근히 압박해온다. 이 또한 무지갯빛 널을 타야 하는 곤란한 입장이다.

얼마 전에 손자 녀석이 어린이집에서 배운 동시를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제대로 되지도 않는 발음으로 쫑알거리는 것이 너무 귀여워 한참을 웃다가 뒤늦게 동시 내용을 감지했다.

엄빠가 좋아요.

어른들은 이상해요.

어른들은 이상해.

엄마가 좋니·

아빠가 좋니·

언제나 이렇게 물으시네요.

우리 대답은 똑같아요.

엄빠가 좋아요.

엄빠가 좋아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이미 배웠다.'라는 책의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어린 손자의 동시를 통하여 오랜 고민(?)이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어른들의 흑백 논리인 or와는 달리 우리 손자는 and를 배운 것이다. 굳이 둘 중 하나만을 강요하며 자녀에게, 이웃에게 언어로 폭력을 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세상은 무수한 숫자와 소리와 색이 각각의 매력으로 어우러지는데, 오직 이쪽 아니면 저쪽만을 택하라는 모순은 삶, 아니면 죽음을 강요하는 사고방식과 무엇이 다를까.

나는 손주들에게 각각 '너를 제일 좋아한다.' 는 모습으로 보이고 행동하려 애써 온 듯하다. 오늘 손자를 통하여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아이들과 살뜰한 정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말할 수도 있다. '그래 할미는 너를 좋아한단다. 그리고 네 형도, 네 사촌도 모두 모두 좋아한단다.'라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할머니의 자리란 흔들림 없는 견고한 자리, 모두를 품어주는 넉넉한 자리, 저절로 따뜻해지는 온화한 자리이다. 잠시 돌아서서 살아온 시간의 뒷모습을 살펴보고 혹 흐트러진 옷깃도 다시 여며야 하겠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재황 충북바이오산학융합원장 인터뷰

[충북일보] 충북바이오산학융합원이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메카인 충북 오송에 둥지를 튼 충북바이오산학융합원은 지난 10년간 산업단지 기업지원과 R&D, 인력 양성이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쉼없이 달려왔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토대로 제2의 도약을 앞둔 충북바이오산학융합원이 구상하는 미래를 정재황(54) 원장을 통해 들어봤다. 지난 2월 취임한 정 원장은 충북대 수의학 석사와 박사 출신으로 한국화학시험연구원 선임연구원, 충북도립대 기획협력처장을 역임했고, 현재 바이오국제협력연구소장, 충북도립대 바이오생명의약과 교수로 재직하는 등 충북의 대표적인 바이오 분야 전문가다. -먼저 바이오융합원에 대한 소개와 함께 창립 10주년 소감을 말씀해 달라. "충북바이오산학융합원(이하 바이오융합원)은 산업단지 기업지원과 R&D, 인력양성이융합된 산학협력 수행을 위해 2012년 6월에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바이오헬스 분야 산·학·연 간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창업 생태계 조성과 기업성장 지원, 현장 맞춤형 전문인력 양성 등의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충북 바이오헬스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부 재정지원 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