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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교사

아이가 놀이터를 향해 나풀거리며 뛰고 있다. 곤색 노스페이스 점퍼에 검정 통바지 그리고 그 아래 분홍색 아디다스 신발을 신고 내게서 자꾸만 멀어지고 있다. 그 뒤를 그가 따라가고 있다. 흰 구름도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바람은 나풀거리는 아이의 단발머리 사이사이를 어루만져주고 있다.

평소에는 울기만 하던 아이였다. 아무런 말도 뱉어내지 못하고 울음으로만 의사를 표현했다. 아이를 처음 만나고 석 달이 어제로 흘렀다. 그러나 아이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통합학급 담임을 여러 번 해 보았지만, 아이의 경우는 좀 더 특별했다. 급식소에 들어서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뒹굴곤 했다. 점심을 먹던 다른 아이들이 모두 눈을 돌려 아이를 쳐다봤다. 그 찢어질 듯 고함 소리에 밥알도 놀란 듯 목 안을 꾹꾹 찔렀다. 어떤 날을 아이는 실내화를 벗어 던지며 목이 터질 듯 울었다. 그럴 때면 그는 천사 같은 눈빛으로 아이를 지도해 줬다.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특수학급을 담당해주는 그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간간이 특수아지도에 관한 연수를 받긴 하지만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하기엔 내 지식이 너무 짧음을 새삼 느끼게 됐다.

그런 아이가 오늘은 나비처럼 가볍다. 아이들 속에 섞여 신이 났다. 라일락 향기가 분분히 날리는 놀이터, 조잘거리는 새소리를 들으며 아이가 내달리고 있다. 그 경쾌한 뒷모습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나풀거리는 아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안도감과 아릿함이 뒤섞인다. 뾰족하게 울어대는 새 소리가 가슴을 휙 긋는다. 아이가 아름드리 느티나무 옆으로 간다. 그 옆에 자전거 거취대를 지나 대나무 몇 그루가 허공에 몸을 널어놓고 흔들리고 있다. 넘어질 듯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고 가느런 팔로 하늘을 휘젖고 있다. 나도 아이의 곁으로 다가간다. 그러자 아이는 또 한걸음에 미끄럼틀 쪽으로 향한다. 아이가 놓고 간 발자국이 나무 밑에 빼곡하다. 아이의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포개며 나무의 등을 만져본다. 단단한 살결이 손안에 가득 퍼진다. 가늘지만 단단한 촉감과 새초롬하게 달린 뾰족한 잎이 나를 보고 있다. 이 나무는 어떻게 이곳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을까. 잎들 사이사이로 드러난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본다. 뾰족한 잎들이 바람의 손길에 사르락대며 웃는다. 마치 웃으며 내달리는 아이의 모습 같다.

아이는 어쩌면 모죽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요히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건 아닐까. '모죽'이라는 대나무는 제아무리 기름진 땅에 심어 놓아도 5년이 지나도록 죽순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 손가락만 한 죽순이 나오기 시작한단다. 그 후 갑자기 하루에 70㎝씩 쑥쑥 자라기 시작하는데, 6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성장해서 나중에는 30m가 넘는 큰 대나무가 된다고 한다. 모죽의 성장 과정을 처음 들었을 때 참 신기한 나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을 해 보면 그런 폭풍 성장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5년 동안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자라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모죽은 소리 없이 5년간 뿌리를 땅속 깊숙한 자리에서 사방으로 10리가 넘게 퍼트린다고 한다. 대나무의 뿌리가 사방으로 뿌리를 내려 땅속 깊숙한 곳에서 주변 십 리가 넘는 땅에 기초를 다져놓는 것이다. 소리 없는 아픔의 세월을 거친 후에야 푸른 나무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리라.

아이는 이제 막 세상이라는 땅에 심어진 모죽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푸른 대나무로 성장하기 까지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리라.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의 기다려주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리라.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의 기다려주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리라. 아이가 푸른 대나무로 쑥쑥 자라길 바란다. 곧게 자라서 혼자서 우뚝 설 수 있는 나무가 되길 기도해 본다. 어떤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다만 흔들리다 중심을 잡는 그런 사람이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대나무 숲 위로 햇살이 가만 가만히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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