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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올해도 아까시 꽃이 곱게 피었다. 작은 꽃송이들이 뽀얀 얼굴을 맞대고 방글거리는 양이 금방이라도 까르르 소리 내어 웃을 것만 같다. 나의 마음은 꽃향기 따라 그때 그 언덕으로 살며시 숨어든다.

내가 첫 발령을 받은 임지에서, 아까시 꽃향기 가득한 남한산성으로 야유회를 가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 중턱쯤 올랐을 때 길에 주저앉아 진땀을 흘리는 할머니와 아내의 골절된 발을 붙들고 울상이 되어 쩔쩔매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 지방 공무원이었던 우리들의 입장은 난처함을 넘어 곤욕스럽기까지 했다. 이때 우리 과에 K가 육중한 할머니를 업고 내려갔다. 멀어져가는 뒷모습에서 꽃향기보다 더 진한 향기를 느꼈다.

그날 이후 나는 K를 종전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성숙한 인간미와 생명력 넘치는 에너지에 매료된 것일까· 얼마 후 그도 나에게 남다른 마음임을 알게 되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가 한층 더 부여되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서로 깊이 신뢰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생각이 엇갈렸다.

우리 가족에게 기독교 신앙은 변할 수 없는 가치이고 삶의 기본이었다. 그런가 하면 그는 완고한 유교 집안의 장남이었다. 그는 교회에 나가는 나를 무조건 말리려 했고, 나는 그에게 교회에 나가기를 권했다.

나는 그를 많이 신뢰했지만 위에 계신 분보다 우선순위에 둘 수는 없었다. 이런 내 마음이 납득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상대도 비슷한 마음이겠지만 자신의 가치관에는 더없이 확고했다. 둘 사이가 석연치 않은 채로 새해를 맞았는데 공교롭게도 그가 전근하게 되었다.

오월의 어느 날 사무실로 그가 찾아왔다. 화들짝 반가운 마음이었지만 끈질긴 줄다리기는 계속되었다. 진심에서 설득도 하고 화도 내 보았지만, 내용은 원점을 맴돌 뿐이었다. 일 년에 걸친 우리의 역사는 상대방의 영혼까지를 보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나 보다. 그날 아까시 꽃향기가 짙게 풍기는 사무실 뒷동산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늠하지 못한 채 이별의 악수를 하고야 말았다. 가슴 한쪽이 베인 것 같은 통증을 감싸 안으며 그의 영혼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떠한 아픔에도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아픔도 생명의 움직임이었다. 그 생명의 움직임은 인생이, 삶이, 더욱 선명해지는 지혜를 터득하게 해 주었다. 그 후 나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고 어떤 상황에도 자족하고 감사하는 법을 터득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2009년 봄, 광주 종합체육관에서 전국 감리교회가 호남선교대회를 열었었다. 체육관 안은 인파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앉아 역사적인 감동의 서막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 혹시 고영옥씨 아니세요·"라는 목소리에 순간 온몸이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럴 수가! 40년 전 그 K가 내 옆자리에 있었다.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거기가 어디인가. 시쳇말로 예수쟁이들이 모인 자리가 아니던가. 그토록 견고하던 성문이 열리다니! 바라던 일인데, 분명히 감사해야 할 일인데 야속하고 어이가 없음은 무슨 연유일까· 그는 아이같이 상기된 얼굴로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변한 모습을 내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약이 올라서 궁금해서 기웃거린 덕분에 오늘 여기까지 왔단다. 나는 묘한 연민을 누르며 손을 내밀었다. 마주 잡은 손에서 미세한 떨림이 전해왔다. 해묵은 그리움의 흔적일까· 영혼의 울림일까· 그 떨림은 더욱 크게 파장을 만들었지만, 애써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거울을 보듯 나를 보았다.

그 날도 돌아오는 고갯길에서 방글거리는 아까시꽃을 만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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