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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새소리에 잠이 깨었다. 산새가 쪼아 문 초여름 내음이 싱그럽다. 아침 해가 여명을 가르는 순간 일제히 터뜨려진 교향악이다. 여름방학 숙제로 새집을 짓고 좋아하던 작은 아들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으니까 지금부터 꼭 25년 전의 일이다.

방학이 시작된 지 열흘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마당을 쓸다가 담장 가까이 지푸라기로 만든 새집이 하나 있는 걸 보았다. 며칠 전부터 새집을 만든다고 들락날락했었다. 어떻게 구했는지 짚을 한 모숨 가져 와 그 중 부드러운 것을 추려내서는 보기에도 앙증맞은 집을 만들었던 것이다.

아이는 제 깐에도 신기했는지 항상 곁에 두고 지냈다. 습기 찬 날은 장독에 내다 널고 올 하나라도 빠질까 봐 신경을 쓴다. 뜰에 널면 편할 텐데, 여럿이 드나들다가 망가뜨릴 게 걱정인지 굳이 그 곳으로 가져간다. 마당을 쓸다가 본 것은 잠깐 볕에 말리느라고 내다 널 때였다. 새집은 그런 식으로 책상 위에 혹은 가방 속에서 보물처럼 다루어졌다.

거기다 알을 까서 키운다고 생각하면 나까지도 설ㅤㄹㅔㅆ다. 수풀 이슬 머금어 동글동글해진 산새 알이 귀여운 노래와 함께 포르르 날아오른다. 언제쯤 귀여운 노래를 부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을 상상할 때는 철부지 시절처럼 들뜬 기분으로 보냈다.

개학을 하고 며칠이 지났다. 장마에 어수선해진 뜰을 손질하던 중 하루는 도장나무 그늘에 있는 그것을 보았다. 볕을 받아 부드럽게 삭은 지푸라기 둥지가 한껏 아늑해 보인다. 그 간 방학 숙제로 낸 줄 알고 까맣게 잊었는데 뜻밖이다. 과제물로 냈다 해도 돌려받을 때가 되기는 했지만 나는 왜 그런지 처음부터 내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아이에게 물어 봤더니 예상한 대로였다. 숙제보다는 새들이 와서 쉬게 하고 싶었단다. 묘한 기분이다. 정원을 가꾸느라고 신경을 쓸 때였다. 온갖 화초가 어우러지기는 했어도 산새가 둥지 틀기는 좀 그랬는데 그 애는 생각이 달랐던 거다. 새들에게까지 관심을 주는 동심이 깨물어주고 싶게 예쁘다. 오죽하면 일껏 만든 방학 과제물을 내지도 않고 숨겨두었을까.

요행히 새가 날아들면 그 속에서 알을 낳아 기를 수 있겠지· 그것을 생각하면 나까지도 상쾌해진다. 그 무렵 뜰을 자주 서성인 것도 그 때문이었을 텐데 알아채지 못한 것도 미안한 일이었다. 기대한 것과는 달리 날아들지는 않았다 해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둥지가 있는데도 날아들지 않는 건 그나마 괜찮지만 깃들고 싶어도 둥지가 없어 날아들지 못하는 건 누가 봐도 속상한 일이다.

그 집을 떠나온 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새집에 관한 기억은 지금도 선하다. 그 다음 새가 왔는지 신경 쓸 겨를 없이 여름은 후딱 가 버렸어도 그 때를 생각하는 마음은 늘 따스해온다. 유치원 때부터 병아리니 사슴벌레를 좋아했던 아이가 이제는 자라 서른이 넘고 삼남매를 둔 아버지가 되었다. 그런데도 내게는 아직 열 살 배기 철부지 때의 기억이 선하다. 이름도 고운 산새들 때문이었을 거다.

제법 넓은 뜰인데 새 한 마리 쉴 곳조차 없다고 신경 쓰는 자세라면 그런대로 풍족하고 아름다운 삶이 될 것 같다. 사람의 마음보다 예쁜 건 또 없을 거라는 감동에 젖어 본 기억이기도 했다. 작은 것이 마음을 풋풋하게 한다면 실 가닥 바람이나 꽃 하나에도 뿌듯해지는 걸 깨우친 셈이다.

불현듯 창문이 훤해 온다. 허공을 쪼던 산새는 기척이 없고 바람에 아카시아 향기가 묻어난다. 얼마 후 꽃이 떨어지고 맵싸한 내음이 사라지면 절기는 그 새 여름이 되었다. 생각만 해도 푸근해지는 초여름 맘씨 고운 산새와 더불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 본다. 아침부터 새들이 몰려와 우짖는 날은 날씨도 맑고 쾌청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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