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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은영

충북도 바이오정책과장

대학시절 긴 방학을 이용해 유럽 배낭여행을 가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반면 나는 '아직 우리나라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는데 해외는 무슨 해외'라는 생각에 해외여행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방학이라 오랜만에 집에 내려와 늘어지게 쉴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 달 이상씩 집을 떠나 있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내가 처음 해외 배낭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순전히 '시간' 때문이었다. 공무원시험 합격 후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몇 달의 여유가 있었다. 홀가분한 마음을 만끽하던 중 이 때 아니면 언제 장기간 시간을 내어 여행을 가보겠느냐 싶어 무작정 언니와 동생을 꾀었다. 여행지는 태국, 기간은 열흘, 우리 세 자매의 무모한 도전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여행사와 함께하는 패키지여행도 아니고, 태국어는 고사하고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딸 셋이 연고도 없는 나라에 간다는 상황에 부모님의 잔소리는 비행기 바퀴가 한국 땅에서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그칠 줄 몰랐다. 그래도 뭐 이미 출발은 했으니 우리는 전진할 수밖에. 열흘이라는 시간동안 태국 곳곳을 다녔지만, 그 시점으로부터 십 년이 넘게 지난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유명 관광지가 아니다. 밤늦은 시간 숙소를 찾느라 헤매는 중 어둡고 음산한 골목길을 셋이 팔짱으로 합체를 하고 앞만 보고 달렸던 순간이나, 무더위 속에 에어컨도 없이 12시간을 달리는 야간열차에서 덜컹 하면 굴러 떨어질 것 같은 2층칸 침대에서 쪽잠을 잤던 기억 등 위기의 순간이나 새로운 경험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별 흥미 없던 해외여행에 뒤늦게 눈을 떴지만 직장인이라는 현실에 떠나고 싶은 마음을 자제 시키는 일이 먼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원치 않는 해외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허가되지 않는 치료제를 사용하거나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치료법을 적용받기 위해 떠나는 환자와 보호자가 바로 그들이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제품인데도 해외보다 까다로운 우리나라의 의약품 허가기준이나 절차 등으로 국내에서는 언제 시판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기업들도 차라리 바로 시술이 가능한 일본이나 중국의 병원과 손을 잡거나 아예 국내기업이 해외 법인을 설립하는 경우들이 생겨나고 있다. 거기에 발맞춰 하루가 급한 국내 환자들 역시 국내기업의 제품을 시술받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 어느 한 언론기사에 따르면 일본을 찾는 국내 암 환자가 한 해에 1~2만 명이나 되고 한 번 치료에 4천만 원 이상을 부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해외병원과 환자를 연결해주는 에이전시가 비용을 부풀려 받거나,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진행하면서 정작 힘든 몸을 이끌고 비행기를 탔지만 해당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 또는 국내에서도 가능한 시술을 해외에서 받게 만드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보다 앞서 작년 10월에는 독일 주재 한국총영사관에서는 원정의료 관련 공지문을 띄우기도 했다. 독일 의료기관이 시행하는 새로운 암치료법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중증(암)환자들이 독일에서 치료 중 사망하는 경우가 있으니 주선자와 해당의료시설을 다시 한 번 검증한 후 독일행을 결정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벼랑 끝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마음으로 해외로 떠나는 환자와 보호자의 심정은 당사자들이 아니고서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제품을 해외에서 시술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국내 의료기술이나 역량이 충분하지만 규정에 막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상황이다. 국제적인 기준과 국내 현실 등을 감안하여 현실적인 규제 정비가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련 내용들을 중앙부처에 건의하는 한편 도내 기업들을 위한 지원책도 지속 발굴하는 것도 소홀하지 않아야겠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애국가의 가사가 오늘따라 먹먹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니지 않을까 잠깐이라도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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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