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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작가

영어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였다.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문장이 하나 있다.

'The dog is faithful animal.(개는 충실한 동물이다)'

서서히 사내다움에 대한 갈망의 시절로 접어드는 소년들에게 개라는 동물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상대를 충분히 위협할 수 있는 힘을 지녔으면서도 주인에게는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개를 거느린다는 것, 그것은 어쩐지 어께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기도 했다.

지금 장년층들의 어린 시절에는 흔히'똥개'라 불리는 잡종견을 집집마다 가축처럼 키웠다. 우리 집 개의 이름은'쫑'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녀석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내 던지고'쫑'에게 달려가 함께 놀았다. 들로 산으로 달리며 함께 자랐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제일 먼저 달려와야 할'쫑'이 보이질 않는 거였다. 불안한 마음이 드리울 즈음, 동네 친구 몇 명이 달려오면서 소리를 쳤다.

"야, 너희 개 지금 냇가에서 사람들이 불에 태우고 있어."

어린 마음에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신발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냇가로 달려갔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겨우 냇가에 이르러 숨을 고를 때, 충격적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른 몇몇이 개를 나무에 묶어놓고 불에 그슬리는 장면이 보였다. 어린아이는 무기력했다. 그곳에 주저앉아 저녁노을이 질 때까지 한참을 울었다.

두 번째로 키운 개의 이름은'로비'였다. 성견이 되어 온 암컷'로비'는 어느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았다. 성질이 워낙 사나워 사람들이 다가가면 이를 드러내며 위협을 가하곤 했다. 주인이 된 우리에게도 몇 달이 지나서야 겨우 자신의 머리를 내주었다. 귀가 곧게 선 모습으로 보아 얼핏 진돗개의 형태를 갖추었지만, 분명 잡종견인 똥개였다.

시간이 흐르면서'로비'는 조금씩 우리와 가까워졌다. 심지어 새끼를 낳았을 때, 모든 사람들의 접근을 불허했지만 우리 식구들에게만은 호의적이었다. 몽실몽실한 새끼를 만지면 지긋이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종종 부모님 몰래 목줄을 풀어 함께 나다녔다. 한번은 친구들과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 중이었는데, 술래가 된 친구가 나를 잡기 위해 달려왔다. 그때 사달이 나고 말았다. 엎드려있던'로비'가 쏜살같이 달려와 친구의 허벅지를 물어버린 것이다. 아마도'로비'는 친구가 나를 해치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우리는'로비'의 털을 잘라 들기름에 볶은 뒤 친구의 허벅지에 붙여주었다. 어른들이 알려준 일종의 민간요법이었다.

'로비'는 동네 개들과도 종종 싸움을 하곤 했다. 대부분의 개들은'로비'의 사나운 기세에 번번이 꼬리를 말고 달아나버렸다. 그런'로비'가 이웃집 도사견과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덩치 큰 도사견에게 머리를 물린'로비'는 필사적으로 도사견의 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힘으로는 턱없이 밀렸지만 머리에서 피가 흘러 바닥을 흥건하게 적셔도 악바리같이 다리를 물고 끝까지 놓아주질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로비'는 영락없이 죽고 말 것이었다. 그때 도사견 주인이 달려와 횃불로 둘 사이를 겨우 갈라놓았다. 피투성이가 된'로비'를 치료해주고 겨우 몸을 추스를 무렵, 우연히 도사견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는 앞다리에 각목을 댄 채 절뚝거리며 걷다가 우리를 우두커니 지켜보더니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그 뒤로 이사를 하면서'로비'에 대한 기억은 사라졌다.

과거의 개들은 집을 지키다가, 가축처럼 식용으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제 개들의 역할과 위상이 시절의 변화에 따라 현저히 달라졌다. 단순히'개'가 아니라, 애완견(愛玩犬)을 뛰어 넘어 이제는 반려견(伴侶犬)으로 승격했다. 사람 못지않게 대우받는 견공(犬公)의 시대가 도래했다. 아니 요즘 개의 팔자는 사람 이상이다. 병약한 부모들은 요양원으로 가게 되지만 개들은 늙고 병들어도 끝까지 주인의 보살핌을 받는다.

애완견 화장실용 비닐봉지를 들고 개들을 산책시키는 풍경은 이제 흔한 일상이 되었다. 심지어 제법 큰 개들을 아기처럼 포대기에 둘러업고 다니기까지 한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마당 한 구석에서 묵묵히 집을 지키던 예전 똥개들의 모습이 어쩐지 그리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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