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임찬순

전 충북문인협회 회장

 해방정국의 결정적인 판도를 가르는 것도 역시 하늘을 차지하는 깃발이었다. 일제가 패망하고 두 손 번쩍 들고 항복까지 했어도 일장기는 누구 한사람 손을 대지 못하고 일제의 횡포는 여전했다.

 그날 36년을 뽐내던 일장기는 급기야 무참하게 찢어져 땅에 추락하고 그 자리를 보기 좋게 차지한 성조기의 나라 미국이 우리의 해방정국을 장악했다. 천지가 바뀐 것이었다. 악의 화신 침략자를 무찌르고 나타난 그 미국은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우리는 점령군으로 왔다. 우리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고 우리에게 엄포를 놓았다. "독립을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하는 사람이 없었다. 맥아더도 하지도.

 그리고 점령군으로 사뭇 군림했다. 그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실정에는 아주 무지해서 가해국(일본)과 피해국(한국)을 온전히 파악 하지도 못하는 형국이어서 한국은 뜻밖에도 많은 불이익과 심지어는 피해를 입기까지 했다.

 용광로 같이 들끓는 해방정국에는 한국인의 애타는 소망과 미국의 계획과는 적잖은 차이가 있어서 미상불 부딪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는 미국 본부로부터 세 가지 임무를 받았다 한다.

 하나는 일본군 무기 해제이고 다른 하나는 신탁통치를 한국인들에게 설득 시키는 것 마지막은 미군정 시대를 펼치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우리 모두 쌍수를 들어 환영했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공히 우리가 모두 결사반대 하거나 전혀 찬성하지 않는 내용이어서 갈등과 충돌이 불가피했다.

 또 당시 우리가 소망하는 것 세 가지는 토지개혁, 친일파 척결, 남북통일이었는데 미군들은 그와 엇박자를 놓고 있어서 또한 갈등과 충돌이 불가피했다.

 하지가 이끈 24군단 7만2천 명은 한국 땅을 밟자마자 서울과 경기를 비롯해 전국을 3단계로 나누어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일본군 10만 명의 무기를 해제 시켜 갔는데 마지막으로 4만8천 명이 무장한 제주도에 주둔한 일본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 그 직전 그들은 군량으로 확보한 1천 석의 쌀을 바다에 버리거나 불태웠다 한다.

 하지는 또 미군정을 선포하며 총독, 경찰국장등 국장급 이상을 해임시키면서 처벌하기는커녕 곧바로 그들을 미군정 고문으로 위촉하고 또 과장급 이하 실무자들은 모두 계속 그 자리에 앉혀 업무를 보게 했다. 그러자 의기양양한 그들은 미군정이 정책을 펴기에 중요한 35도 여권의 정세 분석 비망록을 영어로 번역 작성해 미군정에 바쳤다. 그 내용은 한국사를 왜곡 시키고 친일파를 비롯해 민족 반역자, 친일 자본가, 친일경찰(8천 명)을 추켜세우면서 중용하도록 권했다. 하지는 그렇게 일제의 통치권을 고스란히 이어 받아서 그들에게 의존한 형편이었다. 그러므로 친일파 척결을 미군정 내내 물 건너간 꼴이었다. 그들은 자유당 때까지 계속 중용됐다. 하지의 무지와 무능으로 물가를 폭등시켜 해방 다음해 2.5배, 그 다음해에는 3배가 올라서 해방정국을 대혼란으로 빠뜨렸다.

 12월 16일부터 25일까지 미.소.영 외상들이 모스크바에서 삼상회의를 열고 한국을 5년간 신탁통치 한다고 결의 했다. 한국 전체가 결사반대해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런 가운데 공산주의자들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꾸어 찬탁으로 돌아서 남북 갈등 대립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국인은 남녀노소 누구를 막론하고 반탁 의지가 엄청나서 신탁통치는 마침내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1946년 새해 아침 1월1일 우리가 그토록 소망했던 중앙청에 성조기와 함께 태극기가 비로소 우리의 하늘을 차지했다. 그렇다고 우리의 정치와 권력과 자유를 온통 차지하지는 못했다. 미군정이 3년이나 계속됐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