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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봄은 마당에 나른하게 퍼져 있었다. 물러가던 겨울이 매서운 눈빛으로 되돌아오기 전까지···, 느긋한 봄볕에 벙글던 살구꽃이 갑작스러운 꽃샘추위에 얼어붙던 날 아침, 남편이 간난 송아지를 안고 들어왔다. 요 며칠 분만 예정일이 지난 소에게 집중하고 있었는데, 전혀 생각지도 않던 소가 새끼를 낳았단다. 이런 경우는 예정일 계산을 잘못했거나, 조산일 가능성이 크다.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소의 출산은 수십 년 축산경력의 남편도 당황하게 한다. 송아지 털은 젖어 있었고, 몸은 차가웠다. 어미의 거친 혀로 핥아주면 반들반들 빗은 듯이 가지런하게 마르겠지만, 추워 떨며 널브러져 있는 송아지에겐 그럴 시간이 없었다.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수건과 헤어드라이어를 가지고 왔다. 한겨울에도 소는 새끼를 낳았고, 꽁꽁 언 털을 말려 놓으면 그제야 어미를 찾는 첫울음을 우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이 송아지는 유난히 작다.

양수에 젖어 미끈거리는 등이며 배, 다리를 꼼꼼하게 수건으로 닦으며 헤어드라이어로 말린다. 겨울에 태어나는 송아지 털은 유난히 더 치밀하다. 빼곡히 난 털이 쉽게 마르지 않는다. 가늘게 이어진 다리 아래 누런 발굽이 몰랑몰랑 부드럽다. 어미 뱃속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인지, 양수 속에서 불어서인지 몰라도 그들 삶의 무게를 견디기에는 한없이 부드러운 발굽이다. 네 다리의 발굽 뒤에는 새끼손톱만 한 곁발굽이 두 개씩 붙어있다. 기능을 잃은 곁발굽은 아주 오래전 첫 번째, 네 번째 발가락이었을지 모른다. 어느 날부터 자기 몫의 무게를 옆에 있는 것들에게 슬그머니 넘기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을까, 그러면서 점차 책임감을 유약함과 맞바꾸었는지 모른다. 바닥 한번 밟아보지 못한 발굽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까마득한 시간을 지나 흔적으로만 남은 용맹스러움이 외려 애잔하다. 짐작하건대, 발굽은 가장 낮은 곳에서 엎드려 고귀한 뿔을 영원히 섬기라는 신탁을 받았으리라. 오뒷세우스의 부하들이 잡아먹고 벌 받아 죽었다는 헬리오스의 소들을 생각해보니, 소는 분명 신들의 보호를 받던 뼈대 있는 가문의 짐승이 맞다. '그러니 어서 연약한 굽에 몸을 싣고 서거라. 단단히 땅을 딛고 서, 몸을 불리고 그 불린 몸의 무게만큼 굳어진 발굽에 걸맞는 늠름한 황소가 되어라.'

간절한 나의 바람은 송아지의 가는 숨소리와 식은 콧김에 속절없어진다. 쏙 들어간 뱃가죽만 가쁘게 오르내릴 뿐이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어미는 젖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비상용으로 얼려둔 초유를 녹여 젖병에 담아 송아지 입속으로 넣었다. 자꾸만 고개를 떨구는 송아지. 입안으로 밀어 넣은 인공 젖꼭지에선 우유가 흘러 입 밖으로 새어 흐른다. 입안에 손가락을 넣어봐도 별 반응이 없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젖을 찾아내고, 악착같이 따라다니며 오로지 먹는 것에 목숨을 거는 새끼의 본능을 말하기엔 이 송아지는 너무 연약하다. 꼼꼼히 털을 말려 주었음에도 온몸을 흔드는 떨림은 멈추질 않는다. 지금 이 송아지에게 필요한 건 젖이 아닐지도 모른다. 작은 전기담요를 떨고 있는 송아지 등에 둘러 주고 어미소가 있는 축사로 향했다.

동쪽으로부터 해가 들기 시작한 축사는 조용하다. 길게 자라 양쪽이 겹쳐진 커다란 발굽을 가진 어미소는 뒤돌아 무언가를 먹고 있다. 재빠르게 출산 흔적을 지워야 하는 유전자의 근원은 두려움이다. 가축화가 시작된 지 까마득히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몸속 깊숙이 새겨진 두려움은 저토록 순하고 큰 눈을 만들었을까, 큰 눈을 더 크게 뜨고서 허겁지겁 태반을 먹고 있는 어미의 슬픔은 크고도 깊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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