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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영

수필가

영동의 송호리 솔밭을 걷고 있다. 연녹색의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 같은 풀밭을 걸으며 소나무를 올려다본다. 적어도 100년, 많게는 400년의 세월을 살고 있다는 소나무가 위풍당당하게 파란 하늘을 받치고 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강바람 따라 송화 향도 따라온다. 익숙한 향이다.

실내에서만 같이 공부를 하던 문우들과 함께 떠나온 여행이다. 대개의 사람이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처럼 나도 여행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뭔가 새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대가 저절로 생길 것만 같아서다. 특히 이번 여행은 관계를 맺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이기에, 더 설레고 기다렸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문우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묻어나고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가 청정한 소나무 숲속에 공명하듯 울려 퍼지고 있다.

노송의 기둥을 안아본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를 만난 듯 반갑다.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해마다 이곳에서 여름 수양회를 열었다. 며칠을 텐트에서 숙박하며 치러지는 행사였다. 여행가는 기분으로 이불을 준비하고, 필요한 세면도구를 챙기며 즐거워하셨다. 신앙생활이 인생에 전부였던 어머니는 다녀와서도 며칠을 솔밭에서 들었던 성경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아마도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딸이 안타까워서 그랬던 것 같다.

금강 변으로 눈을 돌리니 강 건넛산이 먼저 보인다. 어깨동무 하고 있는 산이 정답다. 이파리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나보다. 연록의 잔치가 한창이다. 물은 산을 품었다. 반영(反影)이라고 하던가. 바람이 불 때마다 물속의 산이 너울거린다. 사람이 그려낼 수 없는 작품이다. 잡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그리움이 강을 건넌다.

강을 본다는 것은 고향을 보는 것과 같다. 남한강이 흐르고 기름진 너른 들판이 지평선처럼 펼쳐져 있는 곳. 눈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들녘, 지금쯤 고향의 들판은 5월의 태동이 한창이겠다. 무논에서는 개구리가 울고 들길의 미루나무와 파란하늘의 구름까지도 담고 있겠지.

고향을 본다는 것은 가족을 본다는 것일 게다. 힘들고 어렵던 시절이지만 평생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가족들을 위해 성실하게 사시던 부모님, 여섯 남매가 몸과 마음을 서로 부대끼면서 정을 쌓으며 살았다. 지금 형제자매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지만, 부모님만은 고향 선산의 유택에서 자식들의 안위를 기도하며 고향을 지키고 계신다.

다시 산과 강이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본다. 아무리 오래도록 바라봐도 싫증나지 않는 경관이다. 물가로 내려가 본다. 맑은 물에 비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강물에 손을 적신다. 물비린내가 난다. 고향 냄새다.

강변과 송림에서 들려오는 문우들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단풍나무 옆에서, 나무 의자에 앉아서, 강물을 바라보며 자연과 어울려 있다.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자연의 모습을 보며 감탄한다. 아름다운 경치를 오래 느끼고 싶은 문우들은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나도 늘 그랬다. 아름답거나 관심 있는 대상을 만나면 오래 눈에 넣기 보다는 늘 사진을 찍는 데만 열중을 했던 것 같다. 오늘도 멋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몇 커트 휴대폰에 담는다.

서양 속담에 '친구를 알고자 하거든 사흘만 같이 여행을 해라'라는 말이 있다. 여행을 같이 해보면 사람들의 내면을 볼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여행을 처음하고도, 함께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 것 같다. 참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금강의 물그림자를 뒤로하고 솔밭을 걷는다. 솔향이 싱그럽다. 풀꽃 사이에서 무색해지지 않는 연록의 서정에 애정이 간다. 봄이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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