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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청주오송도서관 운영팀장·수필가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아주 달콤하고 생기를 북돋게 하는 비타민 같은 시간이다. 매일매일 색다른 음식으로 건강을 챙겨주는 단골 식당으로 향한다. 언제나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만 보며 식권을 받으시던 할머니 얼굴이 오늘따라 복사꽃처럼 어여쁘게 화색이 돈다. 게다가 앞에 서 있는 젊은이에게, "날씨도 좋고 사방이 꽃 대궐인데 주말에 뭐해"라고 말을 건넨다. "방에서 푹 쉬려고요"라고 말하는 젊은이에게 "다리가 아플 때는 아무것도 못 해 그러니 가슴이 떨릴 때 밖으로 나가 놀아야지"라며 웃음을 보낸다.

얼마 전 본"로망"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에 굶주리며 살았던 우리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가족을 위해서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돈 벌기에 바빴던 세월. 당신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한 사투로 청춘을 바친 시간. 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손잡고 소풍도 가고 싶고 외식도 하고 싶었지만, 마음속으로만 새겨야 했던 아픔을 표출하는 장면. 치매라는 병을 얻은 어머니가 소풍 가고 싶다는 말에 처음으로 함께한 나들이에서 일어나는 일들. 나이가 들었다고 가슴 떨리지 말라는 법이 없을까마는. "노세 노세 젊어 노세"라는 말이 의미하는 뜻을 헤아려본다. 나이가 들면 몸이 여기저기 병들어 가슴은 뛰지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음을. 때늦은 후회와 한탄이 섞인 삶의 철학이 녹아 표현된 말은 아닐까.

지금이라고 얼마나 달라졌을까· 퇴직을 앞둔 인생 선배들이 말하는 후회되는 일 중 꼭 들어가는 말이 있다. 젊었을 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전념하느라 애들이 크는 걸 몰랐단다. 애들과 대화도 하고 싶고 같이 여행도 하고 싶은데 어느새 훌쩍 자라, 아버지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단다. 가족의 생계를 위한 책임감이었다고 항변하기엔 자신이 너무 왜소해져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단다. 이미 다 큰 아이에게 어릴 적 즐거웠던 추억도, 사춘기에 고민을 같이 나눌 친구도 되어주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단다.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닌데 애들과 대화의 벽이, 소통의 불편이 생겼단다. 애들도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까지 그대로 기다려 주지 않으니,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라는 충고의 말을 듣곤 했다. 어릴 때부터 함께 뒤엉켜 놀아주지 않았으니, 어른이 다 된 자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느낌도 다름을 알게 된 건 아닐는지. 선배들의 충고를 기억하며, 그런 후회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도 했건만. 그렇게 녹녹한 직장 생활은 아니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아이들끼리 끼니를 때우게 하고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던 날들이 어찌 하루 이틀인가. 지금도 젊은 직원들이 아이들과 전화로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마음이 찡해진다. 아이들 옆에서 돌봐주지 못하는 애타는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가정도 국가도 환경이 변하고, 먹고살기 좋은 시대가 왔어도 마음 편히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은 아직은 무리인 듯하다. 어쩌면 부모가 되었으면 감내해야 하는 몫은 아닐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힘겨움 속에서도 함께 울고 웃고 하다 보면 어느 날, 빛바랜 사진처럼 행복한 순간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가정의 달 5월. 푸름이 더없이 보드랍고 라일락 향이 더없이 향긋한 계절이다. 더 늦기 전에 훌쩍 큰 아들 손잡고 소풍을 가야겠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어머니도 함께 모시고 가야겠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으니. 가장 젊은 지금. 다리 떨릴 때가 아니라 가슴이 떨릴 때. 함께 느끼고 함께 누리는 시간을 가져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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