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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우석 주필 에베레스트 트레킹 여행기 4

에베레스트 트레킹4(딩보체-투클라-로부체-고락샵)

  • 웹출고시간2019.04.21 14:47:18
  • 최종수정2019.04.21 14:47:31

로부체 계곡을 지나 고락셉 계곡을 이어간다. 해뜨기 전과 후 체감온도가 극명히 다르다. 주변에 무성하던 잡초들이 보이지 않는다. 삭막하고 황량해서 사막 같은 느낌을 준다. 골짜기 사이로 매섭게 찬바람이 불어온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며 숨을 들고 쉰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한계를 넘어선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푸모리(7068m)가 보인다. 비로소 위대함으로 다가오는 히말라야다.

ⓒ 함우석 주필
[충북일보] 4. 숨 막히는 고산준령 협곡에 반하다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새삼 깨닫는다. 형언할 수가 없다. 잊을 수가 없다. 무한 달빛, 보름달도 아닌데 이리도 밝을 수 있구나.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혼잣말로 자꾸 되뇐다.

딩보체를 떠나기 전날 밤이다. 롯지 문을 열고 나간다. 마을길을 따라 조금씩 걷는다. 환한 달이 자꾸만 따라온다. 바람이 달을 끌고 간다. 달빛이 흩어진다. 마을과 설산, 계곡과 바위를 비춘다. 전에 봤던 달빛이 아니다.

3월15일, 배낭을 다시 꾸린다. 산 여행에 나선지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원 없이 오르는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고마운 달님과 추억을 뒤로한다. 식사를 마치고 오전 8시 투클라(4620m)를 향해 서둘러 길을 잡는다. 로부체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고도를 올린다. 언덕길을 올라 새로운 길로 들어선다. 눈앞에 고봉들이 가야할 방향으로 우뚝 선다. 백발의 봉우리들이 한껏 장중하게 버티고 있다. 낮선 황량함에 마음을 새롭게 한다.

로부체 계곡과 설산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 발 한 발에 집중한다. 오전 9시15분 '목동들의 집'에 도착한다. 좌우로 고산준령의 설산이 줄을 선다. 오른쪽으로 어제 고소적응을 위해 올랐던 낭카르창이 보인다. 왼쪽으로 디보체와 촐라체가 따라온다.

6000m 이상 고봉을 감상하는 협곡 트레킹이다. 점점 풍경이 척박하고 황량해진다. 수목한계선을 넘은 지 오래라 초원 아니면 벌판이다. 흙먼지 길이거나 잔설 남아 있는 언덕뿐이다. 이질감은커녕 고향처럼 따뜻하게 다가온다.

감정의 묘한 아이러니다. 감각이 새록새록 깨어난다. 협곡 아래서 지저귀는 새소리까지 들린다. 마치 꿈속을 거닐 듯 모든 감각이 살아난다. 따스하면서도 외로운 감정까지 느낀다. 철저한 고독감 속에서 완전함을 만끽한다.

단독자로서 갖는 행복감이다. 오롯이 지금의 나만을 돌본다. 걷다 보니 햇살이 머리 위를 비춘다. 제 몸보다 더 큰 짐을 진 짐꾼들이 무리로 지나간다. 몸을 앞으로 낮춰 무게 중심을 잡는다. 때론 힘겨운 눈을 치켜뜨며 웃는다.

눈 맞은 채 짐을 나르는 야크들

이름 모를 마을을 지난다. 집 두어 채가 전부다. 하지만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야크 무리를 데리고 풀을 뜯으러 나간 모양이다. 모든 바람과 희망을 내려놓는다. 과거와 미래를 더 이상 머리에 담지 않는다. 시선을 땅에 고정한다.

다시 걸으며 생각한다. 작은 계곡을 에둘러 오른다. 몇 번의 안돌이를 거쳐 고개를 넘는다. 투클라가 보인다. 오전 10시50분 '야크롯지'란 간판의 롯지에 닿는다. 이곳 역시 롯지 두세 곳이 모여 있는 마을이다. 산객들을 위한 일종의 간이역이다.

롯지 앞 빈 의자에 앉는다. 다른 일행과 함께 풍요로운 한낮의 여유를 즐긴다. 사진도 찍고 차도 사 먹고 점심까지 해결한다. 이곳에서 먹은 잔치국수 맛을 잊을 수 없다. 말 그대로 잘 쉬고 잘 먹고 잘 마신 널찍한 휴식 공간이다.

오후 1시40분 다시 출발한다. 롯지 뒤로는 언제나 그렇듯 설산고봉들이 휘몰아친다. 병풍을 친 풍경은 언제나 신비롭다. 해발고도 4600m 이상이다 보니 호흡이 벅차다. 단숨에 200m를 오르기가 쉽지 않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숨이 턱턱 막힌다.

헉헉거리며 발걸음을 옮긴다. 거친 호흡으로 숨을 달랜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꾸무럭거린다. 고지로 갈수록 현지인들과 호흡의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체력 차이가 아니라 호흡 차임임을 알게 된다. 숨을 골라 겨우 언덕에 닿는다.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 느낌을 살핀다. 숨이 깊어질수록 긴장감이 좀 줄어든다. 편안함과 상쾌함도 숨이 들어올 때 함께 온다. 숨을 깊이 마시는 빈도가 잦아진다. 점점 평정심 유지가 힘들어진다. 마음의 에너지를 심장에 집중한다.

고락셉 빙하

가파른 길을 겨우 밟아 오른다. 초르텐들이 줄을 선다. 모두 쿰부 히말라야 설봉을 오르다 유명을 달리한 이들을 기리는 묘탑들이다. 일종의 메모리얼 단지다. 한국 산악인들의 탑도 보인다. 작은 염원을 담아 기도를 올린다.

룽다가 여기저기서 펄럭인다. 외로운 진혼곡을 부르듯 처연하다. 잠시 숙연해진다. 바람도 룽다도 타르초도 흙도 바위도 엄숙해진다. 잠시 다리쉼을 하고 로부체 방향으로 길을 잇는다. 장쾌한 시야가 터진다. 계곡을 따라 걷는다.

좌우 설산을 배경으로 계곡이 흐른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새하얀 계곡이 길게 이어진다. 계곡의 얼음이 햇빛에 반짝인다. 살아 있는 생명력을 연출한다. 얼음 사이로 흐르는 빙하 때문인 듯하다. 생동하는 깊은 존재의 숨결을 느낀다.

산 아래 얼음 호수가 등장한다. 다른 풍경이 빚어진다.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웅장하다. 히말라야의 맑고 시린 호흡소리가 귓전에 들린다. 모든 게 조화롭고 순화롭다. 더 없이 강열한 생명의 연주를 감지한다.

얼음 계곡을 따라 한 두 시간을 더 걷는다. 계곡 옆으로 작지만 예쁜 풍경의 마을이 나타난다. 거대한 설산을 거느리듯 연꽃처럼 피어나 있다. 하얀 부용화처럼 핀다. 내 호흡과 히말라야 호흡이 이쯤에서 어울리는 것 같다.

로부체 마을 이정표

오후 3시 로부체(5030m) 'Above the cloud' 롯지에 도착한다. 로부체에서 평소 방 잡기는 쉽지 않다. 성수기엔 특히 더 그렇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칼라파타르를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하룻밤 이상을 묵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머무는 동안엔 어렵지 않았다. 물건 값도 오히려 딩보체보다 싼 듯했다. 화장지 한 두루마리와 건전지 1세트도 여기서 구입했다. 마을빵집에도 들러 로부체식 빵도 사먹었다. 한 시간도 정도 그렇게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방에 누우니 거대한 눕체(7855m)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바람의 세기와 소리도 다르다. 길이 멀어질수록 물자는 귀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삶은 척박하다. 로부체에서 또 하루를 보낸다. 숨에 자꾸 틈이 생긴다. 허파에 공간이 생긴다.

고소증상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두통을 호소하는 이도 있고 설사로 고생하는 이도 있다. 식욕을 잃어 식사를 못하기 한다. 재미난 일도 있다. 일명 '000형 선크림 사건'이다. 선크림을 바르는 진통소염제로 알고 다리에 발라 큰 효과(·)를 봤다. 한참을 웃었다.

3월16일, 여행 9일차다. 어김없이 오전 6시 일어난다. 목이 아파 밤새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입술도 찬 밤에 더 터진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타이레놀 한 알을 털어 넣는다. 가이드 나왕이 준 아침 생강차가 큰 도움을 준다.

눕체가 다시 환히 보인다. 태양이 떠오른다. 설산의 사위가 온통 황금빛이다. 가슴이 다시 뛴다. 함께 하길 거부하고 한동안 홀로 남는다. 독존적 외로움이 다시 스친다. 허우룩하고 텅 빈 고독이 낮게 깔린다. 저절로 명징한 기운에 휩싸인다.

오전 8시 고락셉으로 향한다. 고락셉 계곡을 따라 간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푸모리(7068m)가 보인다. '끝'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고소 여부는 하늘에 맡기고 간다. 고산병에 걸리더라도 그 또한 새로운 하나의 체험이다.

고락셉 롯지 앞서 쉬고 있는 야크들

설사 칼라파타르에 가지 못해도 좋다. 실패는 아니다. 오전 11시 흙과 빙하, 바위와 돌만 보이는 황무지를 지난다. 저 멀리 고봉설산이 그저 위안거리다. 짐꾼들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 사이 사이에 산객들이 끼여 있다.

야크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길옆을 관통한다. 산객들의 휴식은 오래 간다. 힘이 부치는지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지도상의 빙하지대엔 빙하가 없다. 다 녹아 버리고 속살만 훤히 드러내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절실히 느낀다.

다시 한참을 걸어간다. 산객들의 행렬도 많이 줄었다. 새벽 일찍부터 서둘러 고락셉을 향한 산객들이 대부분 목적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너른 산길을 한적하게 걸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덩그러니 홀로 누리는 산책 같아 괜찮다.

인적이 없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든다. 순간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혼자만의 삶을 진하게 경험한다. 한발 한발 명상 수행 하듯 걷는다. 고도를 높일수록 점점 느려진다. 왜 이곳까지 왔는지 단서가 잡히는 듯하다.

낮 12시20분 고락셉 'Everest in Lodge'에 도착한다. 이제 칼라파타르만 남았다. 걷는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와 닿는다. "내 생애를 통해 그토록 깊이 생각하고, 살아 있음을 느끼고, 본연의 내 모습을 되찾았던 적이 없었다. 감히 말 하건데, 오로지 내 발로 직접 걸었던 여행을 통해서만이 그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장 쟈크 루소

글·사진=함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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