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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유공자 포상에 충북 인사는 없다

59주년 맞아 7년 만에 포상
道 출신 포함 안돼 불만 확산
"정부 객관적 자료 요구했지만
당시 두려운 상황 증거 안남겨"

  • 웹출고시간2019.04.18 20:54:12
  • 최종수정2019.04.18 20:54:12
[충북일보] 민주화를 향한 자발적 시민혁명인 4·19혁명 59주년을 맞아 정부가 7년 만에 '4·19혁명 유공자'를 지정했지만, 충북지역 인사들은 빠져 있어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2016년 마산 3·15의거 관련 자료인 '형사사건부'가 발굴되면서 2012년 이후 7년 만에 유공자 포상을 추진했다고 18일 밝혔다.

정부는 2018년 9월부터 2개월 동안 신청을 받아 공적심사를 완료한 뒤 공개검증·신원조회·관계부처 협의와 추천 등을 통해 포상 대상자 40명을 최종 확정했다.

이번 포상 대상자를 지역별로 보면 △서울-생존자 8명·사망 1명 등 9명 △부산-생존자 1명·사망 1명 등 2명 △마산-생존자 5명·사망 10명 등 15명 △광주-생존자 2명 △대구-생존자 6명·사망 2명 등 8명 △전북-생존자 4명 등이다.

이를 두고 당시 충북지역에서 4·19혁명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도내 4·19혁명 유공자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에 신청한다 해도 쉽게 인정받을 수 없어 실망만 되풀이 하는 실정이다.

보훈처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4·19혁명 보훈대상별 현황'은 △전국-사망자 33명(유족 33명)·부상자 349명(본인 185명·유족 164명)·공로자 444명(본인 296명·유족 148명) 등 모두 826명. 반면, 도내에서는 부상자 3명(본인 1명·유족 2명)·공로자 8명(본인 6명·유족 2명) 등 11명에 불과하다.

1960년 4·19혁명 당시 청주지역을 비롯한 도내에서 수천명이 참여한 시위가 일어났으나, 이들 대부분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셈이다.

4·19혁명은 이승만 정부의 독재 억압과 통제에 맞서 불의에 항거해 자발적으로 일어난 시민혁명이다.

반정부 운동이었던 탓에 시위에 가담한 대부분이 체포돼 처벌받거나 고문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시위 참여자 대부분은 사진 촬영을 기피하고 추후 혁명이 실패로 돌아갈 시 문제가 될만한 증거 자료를 남겨놓지 않게 됐다.

김현수 충북4·19혁명기념사업회장은 "당시 주동자들은 모두 붙잡혔다. 지금이야 성공했으니까 그렇지 굉장히 두려운 상황에서 시위에 참여했다"며 "이 때문에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언론 보도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던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현 정부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는 근거자료를 객관적으로 인정할만한 것들로 제시해야 포상을 준다고 한다"며 "누가 무슨 수로 증거를 찾을 수 있겠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이번에 정부에서 신청받을 당시 함께 4·19혁명에 참여했던 참가자 10여명에 대한 공적서를 직접 써서 제출했지만, 모두 탈락했다"며 "재심을 신청하라고 해놓고 모두 탈락시켜 남은 사람을 실망시켜도 되는 것이냐. 차라리 신청 받지 않는 것이 낫다. 이는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에게 잘못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 강준식기자 good12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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