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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교사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간다. 양말 뒤집히듯 안과 바깥이 뒤바뀐다. 따듯한 바람이 훅 날아 들어내 몸을 감싸 안는다. 따라나선 강아지 영이 철이, 그리고 돼지 꾸꾸와 함께 봄볕 속을 누빈다. 철이는 소나무 앞에 멈춰 서서 오줌을 누고 꾸꾸는 화단으로 들어가 똥을 싼다. 마당으로 들어오면 어김없이 소변과 대변을 보는 그들을 보며 기특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그들이 마당에서 실례를 하고 흙을 파고 노는 동안 나는 개울물 소리에게 인사하고 지천에 펼쳐져 있는 새 소리를 귀에 담는다. 아무것도 없이, 없는 것으로 가득한 허공에게 눈을 떼어주고 땅 위에서 납작하게 웃고 있는 민들레, 토끼풀에게도 발 인사를 한다.

한참 동안 봄날 입구를 서성이고 있는데, 전화벨의 비명이 마당을 가득 채운다. A의 카랑한 목소리가 고요를 몰아낸다. B랑 어울리지 말라고 한다. B가 나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은근히 실어 나른다고 한다. 난 쿨 한 척 하면서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한다. 나라님 욕도 하는 판에 누군들 남의 이야기를 못 하겠냐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난 원래 안 좋은 사람인데 B는 그걸 간파했으니 역시 고수임이 분명하다고 덧붙인다. 잠시 후 B의 목소리가 귀속에서 춤을 춘다. A랑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한다. 나는 말한다. A와 나의 관계는 고무줄처럼 아무 때나 거리를 늘이고 줄이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A는 A 자체로 봐주면 안 되겠냐고 말하며 수화기를 놓는다.

익어 가는 봄 햇살 속을 걸으며 생각에 젖는다. 비본래적인 삶의 특성인 잡담과 호기심 그리고 애매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것은 얄팍함과 산만함을 공통분모로 가진다고 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엄습하곤 하는 공허감과 권태의 원인이 좀 더 자극적이고 신선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양한 흥밋거리를 찾아 다른 사람들을 헐뜯고 조롱하며 잔인한 즐거움을 찾는 것일까. 점심때가 되자 또 A와 B가 번갈아가며 전화를 한다. 나는 샌드위치 사이에 낀 양상추처럼 어정쩡한 초록을 흔들며 둘이 알아서 하라고 하고 핸드폰을 덮는다.

일 년 전 운동모임을 하자고 A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네 명이 하면 좋은데 한명이 부족하다고. 나는 B를 그 모임에 데리고 갔었다. 그리고 석 달을 채 못 넘기고 팔에 엘보가 찾아왔다. 플롤로 주사를 맞으며 나는 모임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일 년이 넘게 서로 친목을 도모 했었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그녀들은 서로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상대에 대한 잡담과 쓸데없는 호기심이 오해를 증폭시키고 분란은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남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은 금물이다. 세인의 특징은 잡담과 호기심이라 했던가. 잡담은 천박함을 낳으며, 호기심이란 진정한 관심도 놀랄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그저 새로운 것, 뭔가 다른 것을 필요로 하는 기분전환의 한 형식이라고 했던가.

남의 시선이나 생각을 나에게 맞추려 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살길 바란다, 다른 사람을 외면하라는 것이 아니라 얄팍한 관심은 오히려 서로를 다치게 하는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있다’고 헤겔은 말한다. 밖에서 억지로 문을 열려고 하니 문이 고장이 나는 것이리라. 상대가 마음을 저절로 열기를 기다리라. 그리고 호기심이 아닌 진심 어린 눈으로 그를 대하라. 그러면 서로 간의 반목과 시기와 질투가 없어지리라. 햇살이 모든 것을 녹아내리게 할 것 같은 오후다. 마당의 벚꽃이 바람을 타고 난다. 벚꽃이 눈 위로 흩날리는 날은 미운 사람을 꽃잎 속에 담아 보자. 미워하는 마음이 스르르 꽃으로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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