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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4.11 16:48:52
  • 최종수정2019.04.11 16:48:52

김혜경

시인

누군가는 왜 사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 작은 풀꽃들은 이미 잔잔한 오색의 꽃을 피웠고 개나리 목련도 폭죽처럼 터졌다. 꽃샘바람이 살 속을 파고드는데 벚꽃도 몽글몽글 꽃구름을 만든다. 벌써 봄은 이렇게 깊어졌는데 여전히 우리는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엘리엇의 시를 읊고 있다.

지난 가을이 내게는 잔인한 계절이었다. 살다보면 악연으로 만나는 사람도 있고 만나서는 안 되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을 만나 곤욕을 치르는 가을이었다. 분하고 억울함에 마지막을 생각해 보기도 했고 찾아가 한 대 때려주고도 싶었지만 그런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밖이다.

모처럼 단체 여행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꽃샘바람이 심하더니 비가오고 눈이 되어 퍼부었다. 봄에 보는 설경은 또 다른 절경을 만들었다. 산사에서 보는 봄눈이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나보다. 불교신자도 아닌 내가 스스로 신발을 벗고 법당에 들어가 삼배를 올렸다. 기도를 하는 법을 모르는 나는 아무 것도 기원하지 못했다. 가만히 앉아 부처님의 가는 실눈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당신께 무엇을 기원 할까요· 당신의 능력으로 무엇을 들어 줄 수 있나요·'

그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nothing' 이라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

아무 것도 받은 것 없이 세상은 굴러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다 제가 맡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인 지도 모른다. 봄은 오고 꽃샘바람도 제 길을 찾아 가는 것뿐이고, 봄눈도 정해진 제 길을 가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축축해진 봄눈의 무게에 비탈의 마른 조릿대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젖은 것들은 제 무게보다 역시나 무거워서 주변을 슬픔으로 물들이고 만다. 제법 뽀드득 소리를 내는 눈을 밟으며 산사를 벗어나는데 돌담 한 귀퉁이 내가 한 번도 이름을 불러준 적이 없는 별 닮은 희미한 꽃이 내 젖은 발을 붙잡는다. 누가 코딱지 나물이라고 가르쳐 준다. 꽃다지라는 예쁜 이름도 있단다. 사월은 잔인한 달이 되겠다. 바위틈에서 겨우 얼굴을 내밀고 잎을 피우고 노란 꽃도 피웠는데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린다. 집도 옷도 없이 이봄을 견뎌야 하는 것이 잔인한 고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잘 견딜 것이다. 꼿꼿한 조릿대는 봄눈에 기울어도 코딱지만한 꽃다지는 견뎌낼 것이다.

한 겨울의 폭설에도 한 여름의 태풍에도 크고 강한 것은 꺾이고 부서져도 작고 연약한 것들은 잘 살아남는다. 거친 것들이 몰려올 때는 작고 연약해지는 것도 좋겠다.

오던 길 되돌려 법당 앞에 섰다. 두 손을 합장하고 질서 없이 마구 속말을 쏟아 놓았다.

더 작아지게 해달라고, 더 연약하게 해달라고, 바람의 눈에 띄지 않게 해달라고, 더 겸손하게 해달라고.

사월에 큰아이를 얻었다. 출산의 순간은 고통이었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내 삶은 축제의 오월이었다. 목련이 꽃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을 때 큰 아이를 얻었고 짙푸른 녹음이 단풍으로 또 다른 꽃으로 피어날 때 축복 같은 작은 아들을 얻었으니 내게 잔인한 계절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가에게 겸손히 무릎 꿇고 작고 연약해지길 처음으로 빌었으니 나는 작고 연약한 별꽃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크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축제의 꽃봄이 잔인한 계절이라면 나는 코딱지나물처럼 연약한 꽃으로 황홀한 봄을 들여 놓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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