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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교사

는개가 소리 없이 내린 일요일 아침이다. 구름의 몸을 벗어난 작은 물방울들이 뿌옇게 내린다. 마치 네가 집을 벗어나면서 뿌리던 뿌연 미소처럼. 베란다 통유리를 통해 세상을 본다. 멀리 서 있는 산이 눈 속으로 들어온다. 내리던 뿌연 입자들은 산허리를 휘감으며 다시 담배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내 머릿속에는 네가 아득하게 피어오른다.

너의 방문을 슬며시 열어본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가슴을 가위질한다. 너의 체취가 말라가는 서늘한 냄새가 덮친다. 눈을 한 걸음 떼어 방안을 걸어본다. 침대 위 배게는 이불을 덮고 취한 듯 잠을 자고, 그 옆 책상 위엔 모니터가 전원이 나간 채 커다란 눈으로 까맣게 나를 본다. 책꽂이에는 『가슴이 붉은 딱새』, 『꿈꿀 권리』,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 네가 읽던 책들이 연병장의 병사처럼 나란히 서 있다. 피아노 위엔, 금방이라도 네가 건반을 두드리길 기다리는 듯 이루마의 『Says the piano』가 회색 옷을 입고 말이 없다. 그 아래 네가 두드리던 장구와 기타가 나란히 있고, 구석엔 까만 보면대도 헐벗은 채 외다리로 서 있다. 벽에는 다섯 살의 네가 하얀 합기도 도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고 연미복을 입은 채 연주를 하는 초등학생의 너도 있다. 네 평 쯤 되어 보이는 방에는 너의 시간들이 뒤엉켜 있다. 방은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너의 미래가 될 날들을 담고 네가 떠나간 날에 멈춰 있다.

나의 시간은 어제로 자꾸만 흘러간다. 그렇게 허망하게 너의 목소리를 놓쳐버린 바보 같은 나의 어제를 원망하면서 애써 너의 흔적을 찾고 있다. 며칠 전 너의 옷 박스가 도착했다. 박스를 보는 순간 묘한 감정이 마중물처럼 일렁이면서 눈 위로 물방울을 품어 올렸다. 밀봉된 박스를 커터 칼로 잘라 떨리는 맘으로 개봉을 했다. 네의 마지막 살결이 닿았을 점퍼와 하얀 운동화 그리고 핸드폰과 지갑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편지가 웃고 있었다. 그 편지 속에 분명히 토요일에 5분정도 통화할 기회가 생길 거라는 글자들이 춤추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토요일 오후가 되길 학수고대했다. 계절이 옷을 갈아입는 지금 쯤, 너는 분명히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고 있을 테고 또 알레르기성 결막염 때문에 눈에는 핏발이 서 있을게 분명하다. 그런데 낯선 그곳에서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밥은 잘 먹는지, 나이가 다른 아이들 보다 한참이나 많은데 잘 지내고 있는지 오만생각들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까 마음을 비우고 어린 동기들이라 생각지 말고, 그저 동기라고 생각하고 잘 지내라 해놓고도 자꾸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하나에 정신을 팔면 하나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나의 뇌의 구조 때문에 너의 목소리를 잡지 못했다. 어제 오전 까지만 해도 그렇게 너의 전화를 기다렸었는데. 오후에 1633전화가 울렸다. 난 그 순간 낮선 전화번호를 보고 끊기 버튼을 눌러 버렸다. 전화를 끊고 나서 아차 하는 생각이 머리를 강타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버렸고 다시는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18시간이 흘렀다. 나는 혹시나 너의 전화가 다시 올까봐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바보 같은 나를 질책하며 네 방을 서성인다.

시간은 하루도 안 지났는데 내가 의식하는 시간은 일 년은 된 것 같다. 가슴 속에 더디게만 흐르는 시간의 강줄기를 보며 시간의 의미를 생각한다. 논리적 시간보다 직관적 시간을 중시했던 베르그송을 이해하면서 혹은 오해하면서 시간 속을 서성인다. 너의 전화를 기다리면서 느끼는 시간은 천년 같다. 제발 오늘이라도 또다시 벨이 울리기를 빌어 본다. 다시 전화가 온다면 그 기쁜 시간의 질감을 마음껏 느끼리라. 아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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