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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3.26 16:27:28
  • 최종수정2019.03.26 16:27:28
[충북일보] 주사파. 한국당이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핵심 키워드다. 과거 학생운동 세력이 내각 곳곳에 포진돼 있다며 집권 여당의 내치와 외치를 공격하는 '단골 메뉴'가 됐다.

토착왜구. 친일파 근성을 지적하는 말이다. 최근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향해 왼쪽 인사들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거침없이 쏟아내는 말이다.

여야의 이 같은 이념논쟁을 보면서 어쩌면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1945~1953년, 즉 70년 전 상황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고 있다.

태백산맥과 남부군

조정래의 대하 역사소설 태백산맥. 1부는 여순반란 사건이 종결된 직후부터 1948년 12월 빨치산 부대가 율어지역을 해방구로 장악한 시기를 그렸다.

2부는 여순사건 이후 약 10개월 뒤까지, 3부는 1949년 10월부터 1950년 12월까지 6·25전쟁 발발 전후, 4부는 1950년 12월부터 1953년 7월 휴전 협정 직후까지를 각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염상진을 중심으로 한 좌익 세력과 토착지주 및 자본가를 중심으로 한 우익 세력 간 갈등을 다뤘다. 전쟁으로 통치 권력의 성격이 수시로 뒤바뀌는 혼돈의 역사를 따라 전개된 스토리는 우리 민중들의 암흑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1994년 9월 영화로 개봉됐다. 영화에서 염상진과 염상구(오른쪽)는 형제다. 혈육보다 더 중요한 이념의 전쟁에서 두 형제는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등 극단적인 갈등 관계다.

그러다가도 형 또는 아우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서로를 배려하는 소소한 모습에서 관중들은 간접적인 휴머니즘을 경험한다.

한국전쟁 전후 지리산 일원을 점령한 빨치산 문제를 더 디테일하게 그린 영화가 있다. 1990년 5월 개봉된 영화 남부군은 1950년 9월 '조선 중앙통신사' 소속 종군 기자로 전주지역 파견 근무를 한 주인공 이태의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이태는 어느 날 한 전쟁터에서 고향 후배를 만난다. 후배가 충북 청주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말하자, 이태는 그 후배가 충북 청원군 출신이라는 기억을 되살려낸다. 이태의 고향은 충북 제천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혈연과 학연, 지연 등은 일종의 이단(異端)이다. 우리는 공산주의자 이태가 고향 후배를 만나 반갑게 웃는 모습에서 전쟁이 아닌 평화를 느낀다. 이태는 빨치산 대원들이 전멸한 뒤 토벌군에 붙잡혔다.

늘 그렇지만 이 영화도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북조선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던 남부군 대원들은 미·소 간 정전회담에서 자신들의 거취가 논의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동료대원들이 죽어나갔지만, 그들은 북조선에 금의환향하는 꿈을 버리지 못했다. 현실은 냉혹했다. 그들이 조국인 북조선으로부터 구제를 받지 못했다.

영화는 1949~1954년 빨치산 유격전에서 사망한 군경 및 빨치산 수를 2만여 명으로 추정했다. 또 3년여에 걸친 한국전쟁 중 남북 양쪽의 희생자 수를 사망 130만 명, 행방불명 111만여 명 등으로 집계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을 그들의 영전에 바친다고 끝을 맺는다. 좌·우익의 극단적인 갈등이라는 소재로 만들어진 두 작품은 모두 우리에게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던져줬다.

이념에 병든 정치 끝내야

공산주의의 몰락과 사회주의 국가들의 시장경제 도입 등을 지켜본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이념의 늪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야 정치권은 여전히 70년 전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분배(分配)'와 성장의 문제를 놓고 다퉜다. 소작농과 지주들의 대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간극 등 계층 간 갈등도 단골 소재였다. 결국은 국가가 개입하는 관치경제로 이어진다. 민심이 흔들릴 수 있는 좋은 소재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이제는 70년 전의 친북·친일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가 아닌 미래로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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