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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해거름 난데없는 폭설이 내렸다. 깜짝 놀라 나와 보니 펄펄 함박눈이다. 눈보라 속의 함박눈은 가지가 꺾인 채 흩날리는 매화꽃이다. 동매화도 그 새 도드라지기는 했는데 겨울이 불쑥 뛰어들었다. 봄으로 가는 길목에 비상이 걸렸다. 혹은 뒤죽박죽 날씨에 봄이 착각을 일으키면서 그리 야단법석이었다.

가끔 그렇게 추돌사고가 일어난다. 열흘 전의 일이다. 봄은 절기에 맞춰 오는 중인데 퇴각해 있던 겨울이 뒤를 돌아보았다. 자운영과 유채꽃은 핀 지 벌써 오래고 갯버들까지 푸르러졌다. 얼마 후에는 벚꽃이 피고 살구꽃에 산도화까지 만발할 테니 꽃사태가 날 지경이다. 울화가 치밀었다. 잰걸음에 달려와 폭설을 뿌렸다. 봄이라고 받아놓은 밥상이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분이 좀 풀렸을까.

그러고도 한 이틀은 바람이 불고 쌀쌀했다. 올해도 예의 꽃샘추위가 지나간 거다. 따스해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춘설이 날리는 게 봄의 속내다. 가끔은 겨울보다 춥다고 느껴질 정도로 바람 끝이 차다. 오죽하면 겨울바람이 봄바람 보고 춥다고 할까. 3월이라 그 정도 바람은 물러갔지만 어쨌든 허울뿐이다. 그 때의 폭설도 기세등등했던 것과는 달리 금방 녹아 버렸다. 극성을 떨어봤자 봄에 대한 까탈이고 시비였을 뿐, 화려한 봄을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다.

대문간에 서 있으면 샛길을 돌아오는 봄 치맛자락이 보였다. 꽃밭에 심은 달래도 그 새 뼘만치 올라왔다. 갑자기 폭설은 내렸지만 봄기운은 곳곳에 벌써 자욱했다. 개울가의 버드나무도 포로소롬한 기운이 감돈다. 햇살이 나른해지면 곧장 물이 오르겠지. 무지하게 추운 겨울도 봄을 막지는 못했나 보다. 그것이 종내 마음에 걸려 한바탕 법석을 떨었지만 눈도 깜짝하지 않을 봄이다. 산수유는 좁쌀 알갱이를 구워대고 진달래 꽃망울도 벌어질 테지. 겨울을 대적할 것은 봄밖에 없다.

봄을 싫어했다. 황사에 바람에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이다. 봄인 줄 착각하게 만들고는 툭하면 추워진다. 봄이라 해도 곧장 따스해지면 잡음이 많다. 변덕맞은 날씨로 브레이크를 건다. 어느 때는 지루할 만치 뜸을 들이고 더디 오는 게 습관으로 굳어버렸다. 바로 그 춥고 따스해지는 되풀이 속에 온전한 봄이 되고 환절기 특유의 부작용을 막는다.

어딘가 남아 있을 꽃샘추위에게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추위가 빨리 오는 것도 탈이었으나 봄 날씨가 금방 따스해질 때도 절기상으로는 무리가 따른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오는 것일까. 힘으로 완력으로 하는 것보다 얼음 녹듯이 풀리는 겻은 순리적이다.

가장 큰 섭리는 겨울 다음에 봄이라고 하는 그것 아니었을까. 겨울이 아니면 우리 그렇게 봄을 기다리지 않았다. 겨울이 추워야 진정한 봄이 된다고 초입에서부터 기다린다. 고단할수록 삶의 마지노선에서 느끼는 보람은 크다. 창밖의 봄은 나른할 정도로 따스하지만 나가 보면 추웠던 게 봄의 양면성이다. 겨울이 추울 때는 오히려 병충해가 적다.

어쨌든 봄은 봄이다. 잠깐 폭설이 지나갔으니 꽃은 더 예쁘게 필 것이다. 며칠 후에는 쑥도 어우러진다. 갓 자란 다북쑥을 뜯어 쑥버무리며 개떡을 쪄먹을 생각을 하니 정강이까지 봄물로 차오른다. 해마다 찾아오는 봄인데 늘 그렇게 가슴이 뛴다.

문득 빠르게 돌아가는 봄 슬라이드. 꽃샘에 바람에 밀리다 보면 잠깐 새 지나가지만 봄 꼭짓점 밑에는 춥고 지루한 겨울 피라미드가 깔려 있었다. 우리 행복도 불행의 피라미드에 드러난 꼭짓점이다. 봄도 겨울이라는 빙산 꼭대기에 머물러 있다. 추울수록 꽃도 예쁘게 핀다. 그것을 증명하듯 폭설까지 내렸지 않은가. 우리 삶 역시 태반은 곡절이지만 그런 중에서 그윽한 향기를 새기고 싶다. 추울수록 예쁘게 웃는 봄꽃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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