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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전 충북문인협회 회장

암울했던 1932년 4월 29일, 백범 김구(1876-1049)는 고기국이 곁들인 아침식사를 김해산에게 부탁하고 윤봉길과 함께 나타났다.

백범은 상해임시정부의 대통령 격인 주석인데도 이른바 최후의 조찬 자리에 고기국이 있는 아침식사를 스스로 마련하지 못할 형편이어서 전차 검표원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그날 아침 식사를 할 때 집주인이 「왜 주석님을 곁에서 돕지 않고 어디로 멀리 가느냐」고 다그치듯 물었다. 조국을 위해 멀리 떠난다고 백범이 대답했다. 마지막 아침을 들면서 윤봉길은 시종 태연자약했다. 그때 7시 치는 소리가 들리자 윤봉길은 자신의 시계를 풀어 백범에게 내주며 「저는 한 시간밖에 시계가 필요 없습니다. 다 낡은 선생님 것을 제게 주시고 이것을 차십시요」하고 말했다. 백범은 그 시계를 평생 동안 간직하고 윤의사를 가슴 깊이 새겼다. 집을 나서 택시를 타고 홍구공원으로 떠날 때 윤의사는 주머니에서 택시값을 제외한 나머지 6원을 내주며 「저는 이제 돈이 필요 없습니다.」했다. 택시가 떠날 때 백범은 목이 메인 채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11시 40분 홍구공원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이 터졌다. 일본왕의 생일 천정절 행사에 일본군 1만여명이 모여 행사를 하고 있는 그 본부 한복판에 윤봉길은 물통형 폭탄을 던진 것이었다. 그리고 목청껏 대한독립만세를 온천하에 외쳤다. 그 폭탄에 정통으로 맞아, 일본군 사령관 백천 육군대장과 상해 거류단장이 죽고 일본해군중장등 주요 장군들과 거물 인사들 다수가 중상을 입어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로인한 일본의 충격과 상처는 대단했다.

일본은 길길이 날뛰며 상해임정을 맹공격하고 백범을 체포하려고 막대한 현상금을 붙였다 그리하여 백범을 비롯한 임정은 가흥, 진강, 장사, 광동, 유주, 광주, 중경, 기강, 마지막으로 다시 중경으로 옮긴 것이 1940년이었다. 얼마나 고달프고 고통스러운 임정의 피나는 고행이었을까. 그동안 백범은 공산주의자들에게 저격을 받아 사경을 헤매기도 하면서 말 할 수 없는 수난을 받았다.

그런 고생 끝에 8.15 해방을 맞자 전혀 뜻밖에도 백범은 통곡을 했다 한다.

우리가 연합군에 가담하지 못한 채 일본군을 쓰러뜨리지 못한 상태에서 해방을 맞았으니 우리는 아무런 주권도 발언권도 아무런 결정권도 갖지 못할 것이라고, 그 예측은 맞아 떨어져서 해방 후 어떠했는가를 우리는 너무 잘 안다.

백범은 귀국해서 서대문 경교장에 기거하면서 경주 최부자 최준崔俊(1884-1970)을 찾았다. 그를 만나자 서로 존경과 신뢰를 가득 담은 정중한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임정이 가장 어려울 때 많은 독립군 자금을 보내주시어 감사합니다.」하여 「인명 기록장」을 내놓았다. 최준은 긴장 한 채 받아 세장 째 열어 보니 최준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이 몇 차례에 걸쳐 보낸 엄청난 액수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감동했다 한다. 그의 친구 백산 안희재를 통해 보낸 독립자금이 과연 잘 들어갔을까 하고 백산은 늘 의심 한 바 있어서 스스로 부끄러워 백산의 무덤을 찾아 머리 숙였다는 일화가 있다.

백범 김구, 단재 신채호, 심산 김창숙을 험 잡을 데 없는 가장 뛰어난 삼대 독립가로 손꼽는 언론인도 있다. 백범을 연구한 어느 학자가 말했다.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처럼 결점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지 감탄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육군 중위 안두희에게 저격 당하여 세상을 떠났다. 오호 통재라. 또 그럼에도 그는 처형은커녕 대령까지 진급했다 한다. 오호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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