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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교사

출근과 퇴근 사이, 사람들에게 보여 지는 나와 숨 쉬는 나 사이를 오가며 하루를 보낸다. 오늘은 내일로 허락도 없이 기울어진다. 저녁이 되어서야 나는 마법에서 풀린 신데렐라처럼 숨 쉬는 나로 돌아온다. 검게 시들어 가는 오늘의 팔짱을 끼고 영화관을 향한다.

현 시대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영화 더 와이프(The Wife). 영화를 볼 때도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의 연결고리를 뗄 수가 없는 건, 아직 내 사유의 세계가 시대 안에 갇혀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여주인공 조안은 문학계 성차별의 희생자다. 미 투(MeToo)의 시대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영화를 가족 간의 희생과 사랑에 관한 따듯한 눈길로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나는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영화를 본다.

곳곳에 페미니즘을 녹인 영화다. 조안은 남편 조셉의 작가로서의 성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다. 그녀는 19세기 중반의 사회적 분위기에 눌려 자신의 재능을 포기하고 남편의 그림자로 살기로 결정을 한다. 자신의 숨쉬기를 접고 가족의 숨을 쉬기로 한 것이다. 당시 여성작가에 대한 편견과, 여성의 글은 아무도 안 읽는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를 포기한다. 그리고 남편 조셉의 뒤에서 조용히 그의 재능이 되어준다. 글을 쓰는 게 좋다는 조안에게 선배 여성 작가는 말한다. 쓰지 말라고. 그리고 여성작가가 쓴 작품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펼치지 펼쳐보지 않은 책이 내는 소리를 들려준다. 조안은 시대의 흐름 속으로 펜을 숨긴다. 그리고 숨어서 글을 쓴다. 조안은 하루 8시간씩 글을 쓰며 그것을 남편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 놓는다. 아무도 모르게 둘만의 비밀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드디어 그녀는 킹메이커로서, 남편을 노벨문학상이라는 자리에 올려놓는다. 조안은 명백한 문학계 성차별의 희생자지만 어쩌면 남편의 숨을 통해 자신의 꿈을 성취해 나가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극중에 비밀을 파헤치려는 기자에 의해 조안은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고 남편에 대한 분노와 연민이 공존하게 된다.

남편 조셉은 평생 바람기를 몸속에 간직하고 산다. 조안과 사는 동안 수시로 조안의 가슴에 칼날을 그어댄다. 시상식을 위해 간 스톡홀롬에서도 젊은 여기자에게 눈독을 들이게 된다. 그러나 조안은 그런 그를 포용하고 감내한다. 한편 그들의 아들은 작가로서 아버지의 평가를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조셉은 작가로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들에게 용기를 주지 않고 아들의 작품을 폄하한다. 조안은 아들에게 상처를 주는 남편에게 말한다. "상처받은 작가만큼 무서운 사람은 없다."고. 상처받은 작가란 아들을 뜻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녀 자신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숨을 쉬지 못하는 작가야 말로 상처받은 영혼이 아니었을까.

조안 역할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글렌 클로스가 남긴 소감이 어느 때보다 강력한 의미로 다가온다. "여성들은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요구당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자신의 성취를 위해 계속 노력하고 꿈을 쫒아야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여성들이 요구받은 조력자로서의 인생에 대하여 과감히 떨치고 나가야 한다. 누군가의 조력자 역할도 인생에서 꼭 필요하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삶이 조력 자체만으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숨을 쉬는 것이다. 타인의 숨이 아닌 진정한 자신의 숨을 쉬는 삶을 살길 바란다. 이 시대의 모든 여성들이 여성으로서의 삶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허둥지둥 내일로 걸어가는 오늘의 빼빼마른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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