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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예로부터 조상들은 소가 지니는 여덟 가지 덕(德)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더해 아홉 가지 덕을 지닌 소가 우리 농장에 있습니다. 그 소의 이름을 남편과 나는 찬숙이라 부릅니다.

떡 벌어진 어깨, 넓고 평평한 등, 단단한 무릎과 가는 발목, 훤칠한 머리에 부드럽게 휘어진 품격있는 하얀 뿔, 긴 눈썹 덕분에 우수에 젖은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사려 깊어 보이는 눈···, 찬숙이는 어디에 내놔도 돋보이는 미모를 지녔습니다. 잘생긴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지닌 매력 중 최고의 덕목은 넓은 이해심과 착한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암소가 늘어나 축사가 비좁을 때가 있습니다. 출산을 앞둔 어미 소에게는 독방을 주어 환경을 불안하지 않게 해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지내던 소를 다른 칸으로 옮겨줘야 하지요. 이번에 해산할 소와 함께 지내던 짝꿍은 성격이 못되고 까칠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기를 좀 죽이고 조용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 찬숙이가 있는 방으로 옮겼습니다. 기골이 장대한 찬숙이에게는 다른 소들이 함부로 대들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러기에 찬숙이 짝꿍은 자주 바뀌는데 그들은 이를테면 문제아 아니, '문제소' 이기가 쉽습니다.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나이를 물어 위아래를 정해 질서를 잡지요. 소들도 새로운 상대를 만나면 제일 먼저 힘겨루기를 하여 서열정리를 합니다. 하지만 찬숙이는 아무리 덩치가 작은 소들을 만나도 먼저 싸움을 걸지 않는 평화주의자입니다. 세상사를 초월한 듯 보이기도 하지요. 이번에 짝꿍이 된 소는 무슨 배짱인지 먼저 뿔로 들이받고 시비를 자꾸 겁니다. 급기야 찬숙이 콧등에 피까지 냈습니다. 찬숙이 체격에 한참 못 미쳐 보이는데도 사료통을 혼자 차지하며 가로막는 객기까지 부리고 있습니다. '저러다 다치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지켜보다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상황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문제의 짝꿍도 다친 데 없이 나란히 누워 질겅질겅 껌까지 씹으며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대체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찬숙이의 가르침에 짝꿍 소가 잘못을 뉘우쳤을 가능성을 생각해 봅니다. 밤늦도록 그들만의 언어로 점잖게 타이르는 찬숙이를 그려보니 '피식' 웃음이 납니다. 또는, 문제의 그 소가 찬숙이의 커다란 덩치에 겁먹어 선수치고 덤볐지만, 찬숙이는 그 마음을 헤아리고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줬을거라는 생각도 합니다. 사람들도 자신이 없을 때 더 예민해지고 까칠해지듯이 말입니다. 그동안 다른 소들과의 관계나 성품으로 미루어 생각할 때 꽤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춘원은 '우덕송(牛德頌)'에서 소가 시름없이 꼬리를 휘두르며 "파리여 달아나라. 내 꼬리에 맞아 죽지 말아라"하는 모양이 인자하다 하였습니다. 하물며 동족인 소에게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렇듯 찬숙이의 어진 성품 덕에 걱정했던 암소들의 합방 사건은 하루 만에 끝났습니다.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을 살면서 굳이 소에게서까지 군자의 덕목을 찾는다는 것이 말장난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에게나 사람에게나 덕(德)은 관계를 만드는 중요한 가치가 되기도 하지요. 옛 어른들이 소의 여덟 가지 덕을 이야기한 것은 꼭 필요하지만 그만큼 쉽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자신의 욕심을 비워야 하기도 하고, 가끔은 손해 보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찬숙이는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우리 목장에 있는 소들 가운데에서 대장을 뽑는다면 당연히 찬숙이가 되어야겠지요. 그녀는 여느 사람들도 갖기 어려운 아홉 가지 덕을 지녔으니 말입니다.

어느 때 보다 리더의 덕목을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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