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다시는 못 올 영원의 시간 속으로 남편을 들여보내고 흠뻑 젖은 눈을 닦으며 유족 대기실로 나오던 친구의 무릎이 풀렸는지 쿨렁 넘어가는 걸 옆에 있던 아들이 붙들었다.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기가 얼마나 힘겨웠으면 저리도 휘청거릴까. 떠나는 이를 막무가내로 붙잡아 본들, 몸부림해본들 소용이 없었다는 체념, 그 허망함이 옷처럼 걸쳐있다.

어떤 경우에도 초심을 잃지 않던 지혜로운 친구, 어디에서나 명랑한 모습으로 주위에 웃음을 주던 여인이다. 연약해 보이는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가 육중한 남편을 부축하고 비틀거리면서도 눈이 마주치면 찡긋 어설픈 윙크를 날리던 그녀지만, 긴 병시중 끝에 장례 일정까지를 감당하느라 패인 볼이 더 패어 허깨비가 걸어오는 것 같다.

얼마가 지났을까. 유족 대기실 전광판에 고인의 이름이 지나간다. 더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음을 알리는 문구다. 친구의 눈동자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는 그녀 특유의 유머러스한 억양으로 '나 미망인이 되었다.'라고 천연덕스럽게 한마디 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가슴이 먹먹하다.

부음을 듣고 장례예식장에 도착했을 때 전광판에서 미망인 ㅇㅇㅇ라는 글자를 읽고 아연실색했다. 미망인이란 단어가 내 친구 이름 앞에 붙은 것도 충격이지만, 그 단어가 주는 의미가 더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자사전에 보면 미망인(未亡人)이란 남편(男便)과 함께 죽어야 할 것을, 아직 죽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과부가 스스로를 겸손(謙遜)하며 일컫는 말이다. 옛날 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함께 순장하던 풍습에서 유래된 말로 요즘 기준으로 보면 터무니없는 단어다.

미망인은 ≪춘추좌씨전≫의 장공편(莊公篇)에 나오는 말로 초나라 문왕의 부인이 과부가 된 자신을 낮춰 처음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는 남편을 먼저 보낸 아내가 자칭하는 겸양어이다.

수년 전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잇따라 서거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신문 방송에서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두 '미망인이 서로 슬픔을 나누었다.'라는 보도를 접했던 일이 잊히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사람이 사망했을 때 그의 부인을 일컬어 '미망인'이라고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혹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여성을 높여 부르는 말'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초나라 문왕의 부인이나 내 친구는 자기 자신을 낮추는 의미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나 제삼자가 죽은 이의 부인을 두고, 그것도 한 나라의 수장이었던 이의 부인에게 그리 호칭하다니…. 우리가 쓰는 말 중 이런 어휘가 어디 한두 개일까만 오늘따라 유달리 걸리는 건 왜일까.

이제 고인의 모습은 한 줌의 재로 남겨졌다. 소멸과 생성이 반복되는 것이 세상 이치라는 냉정한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밤마다 긴 꼬리를 감추며 별들이 사라져갔는데도 아직 밤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하다. 사라진 별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생성되었다는 증거가 아니던가. 시 할아버님의 임종과 비슷한 시기에 큰아이를 출산했던 기억도 중첩된다.

미망인이라 자칭하는 친구의 작은 키가 더 작아 보인다. 이제 그녀의 자녀들은 제집으로 갈 것이고, 객들도 돌아가겠지.

홀로 남을 친구야, 아직은 여기 가슴 따뜻한 친구들이 있고, 하늘은 저리 너그럽게 누구에게든 햇볕과 비를 골고루 주시지 않니· 무슨 말이 들리겠느냐만 미망인이라 이름하며 자신에게 굴레를 씌우지 말고 돌아온 싱글로 당당하게 살기를 바란다. 우리 남은 날 동안 의연하게 연륜으로 다져진 미덕과 겸양의 나날을 펼쳐보자꾸나. 비록 지금은 비가 내리지만, 저 구름 속에서는 반드시 해님이 우리를 비춰줄 준비를 하고 있을 거야.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