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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재

국민연금공단 청주지사 노후준비서비스 팀장

지난 1월 중순경, 어느 차가운 날, 모 성당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에서 배식봉사를 하게 되었다. 10시 50분경 급식소에 도착해보니 이미 많은 분들이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배식은 11시 40분경부터 시작이 되는데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그날은 더 일찍들 나오신 거 같다. 줄서는 곳이 실내라서 춥지도 않았고, 의자에 앉아서 줄을 설 수도 있으며, 집에 있어도 달리 할 일도 없고, 아침도 굶었거나 시원찮게 드셨으니 굳이 늦게 나올 이유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이 노인들이고, 남자들이다. 옷차림도 초라해 보이는 것이 다들 어렵게 사시는 분들 같다. 급식소 인근에 달동네가 있는데, 거기 사시는 분들 같다. 아마 이분들은 매일같이 여기서 아점이나 점심으로 식사를 하시는 모양이다. 그나마 날씨가 좋아 일거리라도 있는 날이면 일하러 가시는 분들도 있을 거 같은데, 이 추운 겨울엔 일거리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이 오신 거 같다. 그런데 할머니들은 왜 안오실까·

배식을 기다리면서 같이 간 봉사자들과 추론해 본다.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을 보면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훨씬 더 오래 산다. 그럼 남자노인들 보다 여자노인들이 훨씬 더 많을 텐데, 어째 여기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남자노인들일까·

답을 얻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거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혼자 사는 분들일 것이다. 미혼, 이혼, 사별 등으로 혼자 살게 되었을 것이다. 혼자 살더라도 여자노인들은 나름대로 식사해결이 용이하지만 남자노인들은 그게 쉽지가 않을 것이고, 본인이 혼자 해먹는 것 보다는 이런데 나와서 한 끼 해결하고 가는 게 더 낫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드디어 배식이 시작됐다. 신호와 동시에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정렬을 한다. 급식은 완전 무료다. 그나마 예전에는 몇 백 원씩이라도 받았는데 요즘은 그것도 안받는 모양이다. 필자는 김치배식을 맡았다. 배추김치를 한 웅큼씩 식판에 담아드리는 것이다. 김치를 좋아하는 필자는 그분들에게도 넉넉하게 담아드렸다. 헉, 현장감독(·)님께 제지를 받았다. 김치를 그렇게 많이 담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담고 있는 양의 절반씩만 담으라고 한다. 왜 그럴까· 요즘 김치값이 비싼가·

추운 날에는 에너지 생산을 위해 식사량이 많아지는 건가· 식사를 받아들면서 밥을 더 달라고, 많이 달라고, 아주 많이 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 언뜻 봐도 식판에 밥이 수북하다. 그런 분들은 반찬도 더 받아 가신다. 아침을 안드시고 나오셨나· 아니면 아예 저녁까지 때우시려고 그러시나· 추측만 할 뿐이다.

몇 년전 어느 노인복지관에서 봤던 가슴아픈 모습이 떠오른다. 한 할머니가 드시다가 남긴 밥을 식탁아래서 몰래 비닐봉지에 담고 계셨다. 남겨서 집에 가져가시려는 거 같았다. 복지관에서는 음식을 싸가는 것을 절대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집에 가져가서 바로 먹지 않고 나중에 상하게 된 음식을 먹을까봐 그런단다. 그러고는 복지관에서 상한 음식을 줘서 그렇게 됐다고 할까봐. 여기는 식당이 작아서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다. 감독하시는 분이 모자란 국을 보충해주기 위해 계속 돌아다니고 계시니 남긴 밥을 담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 그래서 아예 많이 드시고 가려는거 같았다.

노후준비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필자는 이런 모습들을 볼 때 마다 많은 생각에 잠기곤 한다. 배식을 하면서 줄곧 떠나지 않았던 생각들, 우리도 나중에 저 줄 속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 이분들에게 이런 급식소 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것이다

이분들은 노후에 왜 이처럼 어렵게 살게 되셨을까· 이분들도 젊고 건강한 시절을 지나왔을 텐데, 그 때는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전혀 예측하지 못하셨나· 젊은 그 시절이 아무리 어려웠어도 지금만큼 어렵지는 않알을 텐데, 지금의 나를 위해 젊은 시절에 좀 더 남겨 놓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물론 열심히 살다가 뜻하지 않은 실패와 불운을 겪으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아직 '나는 젊다'고 생각하는 여러분들은 10년, 20년 뒤의 나의 모습을 그려보고, 지금 보다는 훨씬 불쌍해질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 조금 덜 쓰고, 더 남겨 놓읍시다.

그런데 김치는 왜 그렇게 적게 담으라고 했는지, 배식이 끝나고 감독(·)님이 알려 주시더라. 김치에 대한 각자의 선호가 다르고, 치아가 안좋아서 씹지를 못해 그대로 버리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 그 맛있는 김치도 나이들고 이가 안좋으면 제대로 먹을 수가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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