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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

시간은 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계절이 익어가는 것이라던가.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좋다. 추위가 한창인데 라울을 하나 사들고 와서 고것들과 눈 맞추느라 베란다에 서성이는 시간이 길다. 커피 한잔 끓여 저녁 하늘빛을 바라보는 일도 좋다. 언제부턴가 베란다에 깔아 놓은 비닐 장판이 자꾸만 눈에 거슬린다. 오래전에 급하게 이사 들어오면서 급한 대로 덮어 둔 비닐장판이 이제 수명이 다 된 모양이다. 평생 썩지 않을 것 같은 비닐도 뒤틀리고 물이 고이는 부분부터 까맣게 곰팡이가 슬었다.

오랜 동안 바닥의 역할을 잘 해주었기에 베란다는 내 좋은 사색의 공간이 될 수 있었다. 타일을 다시 깔을 때까지 조금만 더 버텨주면 좋겠는데 바닥으로 사는 일에 지쳤는지 점점 찢어지고 색이 변해간다. 바닥으로 추락하는 일은 순간이라지만 바닥을 갈아엎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지난 가을 며칠 짬이 나는 틈을 이용하여 타일과 시멘트를 사서 타일공사를 하였다. 물 구배가 잡히지 않은 부분에 신경을 쓰며 겁 없이 타일을 깔기 시작했다. 시멘트를 바르고 타일을 깔고 줄눈을 넣는 일까지 바닥을 기며 해야 하는 일이었다.

바닥을 기는 일은 바닥과 하나가 되는 고된 일이다. 바닥이 반듯하고 튼튼해야 모든 것이 바로 설 수 있다. 살면서 몇 번이나 바닥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까. 발로 함부로 짓밟고 오물을 버리면서도 든든히 버텨주는 바닥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었던가. 한 여름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종일 바닥과 하나가 되어 뒹굴 수 있는 시원함과 편안함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 내 바닥이 되어 주었기에 이 만큼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나도 내 아이들에게는 바닥이 아닐까. 평평하고 반듯하고 깨끗한 바닥이 돼주고 싶었는데 제대로 된 바닥이 아니었던 것 같다.

바닥으로 사는 일이 누구에게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바닥을 딛고 일어서 바닥을 호령하며 사는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나도 바닥을 벗어나 직립의 보행을 하거나 하늘을 날며 사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겠지. 한 몸처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바닥을 원망하며 살았던 날도 있었겠지. 흙먼지 뽀얀 거리를 제 안방처럼 여기며 사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바닥을 탈출하는 희망을 가지고 살지 않겠는가.

걷어낸 비닐 장판도 드디어 바닥을 벗어나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할까. 베란다 한 귀퉁이에 둘둘 말려 서있는 폼이 신분의 상승이 된 양반이라도 된 양 허리를 펴고 있다. 언제나 위를 보아서도 안 되고 의견을 가져서도 안 되는 천한 바닥의 계급에서 이제는 당당히 허리를 펴도 되는 신분의 격상.

집안일에 바지런을 떨지 못하는 나는 늘 바닥에 눌어붙어 바닥처럼 사는 날이 많다. 책도 신문도 TV도 바닥에 배를 깔고 본다. 큼직한 소파를 옆에 두고도 바닥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편하니 바닥으로 태어난 팔자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새로 깔아 놓은 타일 바닥이 반듯하고 환하다. 강아지가 아무리 오줌을 싸도 냄새나는 일이 없겠다. 물 고이는 부분 없이 구배를 잘 맞춰 반듯하고 단단하니 가을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국화 화분에도 봄을 알리는 프리지아 화분에도 맘 놓고 물을 주어도 좋을 것이다. 신새벽부터 석양까지 서성이며 수더분하게 핀 꽃들과 눈 맞춤을 해도 기분 좋게 나를 받아줄 베란다 바닥이다.

바닥이 되는 일은 저를 버리고 남을 받아주는 일이다. 누구든지 발로 든든히 설 수 있도록 버텨주는 일이다. 남을 세우고 모든 것을 세우고 저는 엎드려 흔들리지 않는 일이다. 모든 것을 받아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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