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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흰색 바탕에 태극 문양,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 태극기는 평화를 희망하는 우리 민족의 염원을 담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네 모서리 건곤감리의 4괘가 방어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사방이 뚫린 일장기와 달리 태극기는 쇄국적인 마인드를 보여준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목숨과도 바꾼 태극기

조선 고종 12년(1875), 일본 군함 운양호가 강화도 해역을 불법 침입했다. 조선은 포격으로 맞섰다. 일본은 포격에 대한 배상과 함께 수교(修交)를 요구했다. 고종 13년(1876년) 한·일 간 강화도조약 체결이 논의됐다.

일본은 이 때 '운양호에 엄연히 일본국기가 게양돼 있었는데 왜 포격했느냐'며 트집을 잡았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국기'의 의미조차 모르던 시기였다. 이 일을 계기로 조선에서도 국기 제정의 필요성이 활발하게 논의됐다.

1882년 8월 9일 수신사 박영효 일행이 일본 배를 타고 도일할 때 당장 게양해야 할 국기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때 조정에서 대략적으로 정해진 국기 도안을 약간 고쳐 태극사괘의 깃발을 만들었다.

이들 일행은 8월 14일 일본 고베(神戶)에 도착해 숙소건물 지붕 위에 이 기(旗)를 게양했다. 이것이 태극기의 효시다.

조선 조정은 이를 1883년 정식으로 국기로 채택·공포했다. 이후 대한민국 수립 후인 1949년 문교부 심의위원회를 거쳐 음양과 사괘의 배치를 확정했다. 대한민국의 태극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태극기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정신적 지주였다.

1950년 6·25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두 형제(장동건·원빈)의 비극적 운명과 형제애를 다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개봉 13일 만에 관객 500만 명,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38일 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서울 대학가에서 시위를 하던 학생이 웃통을 벗고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도 우리 국민들의 뇌리 속에 남아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당시 우리 국민 모두는 전국 곳곳에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베트남 축구를 동남아시아 최정상으로 올려놓은 박항서 감독을 흠모한 베트남 국민들은 베트남 국기와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를 누볐다.

이처럼 태극기는 국내·외에서 우리 동포들의 가슴 속 깊게 자리잡은 '첫 사랑' 같은 존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 이후 태극기는 특정집단의 전유물로 전락했다. 탄핵을 주장하는 촛불세력에 맞서 일부 보수 세력이 들고 나온 것이 바로 태극기다.

일부 보수 세력은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를 들었다. 왜 그랬을까.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동일시한 그들의 행동은 상당수 대중들의 동조를 얻어내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되레 태극기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며 깊은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딱 100년 전. 비폭력 평화시위의 상징인 3·1 만세운동. 민족 대표 33인은 독립선언문을 만들었고, 충청도를 중심으로 3·1 만세운동이 활활 타올랐다. 당시 민중들은 한 손에 태극기를 들고, 다른 한 손엔 횃불을 들었다. 그들에게 태극기는 자신들의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절대적인 가치였다.

태극기 들고 미래로

이제 과거 100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1천년을 위한 힘겨운 여정에 나서야 한다. 이 여정에서 태극기는 우리의 정신적 지주다.

태극기를 외면한다면 대한민국은 희망을 가질 수 없다. 태극기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불사른 순국선혈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라고 해서 태극기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오해받기 싫어서 태극기를 들지 않는다는 생각도 이제는 바꿔야 한다.

2019년 3월 1일. 5천만 겨레의 두 손으로 태극기를 들어보자. 태극기를 들고 가슴 벅찬 대한민국의 미래를 외쳐보자. 우리의 소원인 통일도 태극기를 들고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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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