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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하늘이 바다인지 바다가 하늘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수평선 저 멀리, 대한민국 최남단의 섬 마라도가 가물거린다. 시원스레 물보라를 날리며 달린 배는 마라도에 우리를 내려놨다. 아직 배 위에 선 듯 발밑이 흔들린다. 흔들림이 없는 곳에서 더 흔들리는 건 또 뭐란 말인가. 뱃멀미보다 진한 현기증이 인다.

 바닷바람 큰 숨으로 삼키고, 울렁임을 진정시키며 걷다 보니 '국가기준점'이라는 표식이 눈에 띈다. 정밀한 경도, 위도, 표고가 꼼꼼하게 새겨 있었다. 이곳을 기준으로 삼아 우리나라 국토의 측량이 이뤄진다고 한다. 이를테면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는 대한민국의 시작이자, 끝을 알리는 기준점이다. 돌에 새겨진 '기준점'이란 글자가 거역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온다.

 체육 시간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엄한 얼굴을 한 선생님이 '기준'을 정해놓고 헤쳤다 모아놓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기준'을 맡은 친구는 그 자리에 뿌리라도 내린 듯 움직이지 않아야 하고 주위에 친구들만 연신 뛰었다. 그래야 했다. 그런데 어쩌다 기준이 된 친구가 같이 뛰는 날에는 대오가 뒤죽박죽된다. 덕분에 토끼뜀으로 운동장을 몇 번이고 돌아야 했다. 기준이 흔들리지 않아야 질서가 잡힌다.

 어떤 농부가 아들에게 밭을 가는 법을 가르쳐 주면서 밭을 갈 때는 밭두둑만 보지 말고 멀리 밭 끝에 기준점을 잡고 거길 보면서 갈아야 이랑이 똑바로 된다고 했다. 그런데 아들이 갈아놓은 밭이랑이 온통 구불구불했다. 아들에게 기준점을 잡고 밭을 갈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책망하자 아들은 "아버지 말씀대로 기준점을 잡았는데, 적당한 것이 보이지 않아 밭둑에 묶어둔 염소를 기준으로 했지요."라고 대답했단다. 기준이 문제였다. 기준이 움직이니 밭이랑도 구불구불할 수밖에.

 살다 보면 지켜야 할 기준이 많기도 하다. 우리 몸에도 기준점이 있어서 그 기준을 벗어나지 않아야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 체온은 36.5도가 기준이듯이 혈압, 맥박, 혈당 등도 다 나름의 기준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이 기준을 넘나드는 것이 많아졌다. 요즘은 기준보다 높은 체지방의 수치를 줄여보려고 열심히 근력 운동을 한다. 혈압이나 혈당수치도 수시로 점검하며 기준 가까이에 있으려고 식단을 조절하고 약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여하간 기준을 넘어서는 순간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게 몸이다.

 인생 또한 수많은 기준이 존재한다. 우리 조상님들은 자장가에도 삶의 기준을 담았었다. '나라에는 충신동이 부모에게 효자동이 형제간에 우애동이 일가친척엔 화목동이….' 수없이 부르고 또 불러서 가슴에 새겨줬다.

 요즘은 사는 게 참 복잡하다. 나 같은 사람들은 휴대전화 사용하는 것도 일이다. 이처럼 복잡하고 바쁜 시대를 살아내는 똑똑한 젊은이들의 삶의 방식이 다 정답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그렇다면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숱한 사건은 또 무어란 말인가. 흔들리는 기준 때문에 우리 같은 노인들까지 토끼뜀을 뛰며 뺑뺑이를 도는 것은 아닌가.

 세상은 참으로 빨리 변한다. 정보가 너무 많다. 전에는 1세기가 세상의 변화를 보는 기준이었다. 얼마 전까지도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다. 요즘은 최근 5년간의 세상 변화가 지난 100년보다 많다고 한다. 더는 40을 불혹(不惑)의 나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세상 미혹이 심하다. 그런데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기준이 있어야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나를 만들고 있는 지향점을 바라보며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 더 높여야 하리라.

 오늘 마라도에 세워진 여여(如如)한 기준점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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