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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의 유기농 선구자, 파란눈의 이방인 '정일우 신부'

청천면 '솔뫼농장'을 '솔뫼유기농영농조합법인'으로 일구다

  • 웹출고시간2019.01.01 20:40:38
  • 최종수정2019.01.01 20:40:38

검정 고무신과 소탈한 복장의 정일우 신부 평상시 모습.

ⓒ 사진제공=김의열 씨
[충북일보] 정일우 신부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가톨릭 신부다. 원래 이름은 존 빈센트 데일리(John Vincent Daly), 1998년 대한민국에 귀화했다.

정 신부는 지난 1935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8살 때 예수회에 입회했다. 세인트루이스대에서 철학을 공부해 1960년부터 서강대에서 철학을 가르쳤고, 3년 후 미국으로 돌아가 신학을 공부해 사제서품을 받고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서 40년 가까이 예수회 신부로서 빈민운동을 하다, 도시빈민운동이 자리 잡을 무렵, 199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의 값싼 노동력 제공과 저가 미곡 정책으로 희생을 강요당한 농촌으로 눈을 돌렸다.

서울 상계동이 철거되면서 두가구와 함께 1994년 충북 괴산으로 내려가 함께 농사를 지며 사람의 맛이 나는 마을로 만들자고 정 신부는 약속했다.

그는 괴산은 자기가 태어난 미국의 농촌 고향과 같다고 생각했으며 상계동의 갑작스런 철거로 어려워진 주민들에게 "더 가난해졌으니까 잘된 것이다. 가난해야 천국에 가깝다"며 주민들을 위로했다.

정일우 신부가 우렁이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 곳으로 모판을 옮기고 있다.

ⓒ 사진제공=김의열 씨
정 신부는 1994년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에 농촌청년 자립을 돕기 위한 누룩공동체를 만들어 농촌 운동으로 우렁이농법, 유기농법 등 전파에 힘을 쏟았다. 2002년 초까지 9년 가까운 세월을 농민의 자리에서 농민과 함께 울고 웃고 지냈다.

솔뫼농장이 위치한 청천면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평온한 들녘이 펼쳐져 있어 환경오염이 적어 깨끗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솔뫼농장은 친환경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한 김철규 씨 등 토박이 4가구와 귀농가족 두가구가 만들었다.

정 신부는 솔뫼농장이 만들어진 초창기에 와서 당시로서는 미숙하고 치기어린 농장의 젊은 농부들과 함께 힘든 일을 기쁜 마음으로 겪어내면서 농장의 보이지 않는 정신적, 물질적 바탕을 일궜다.

초창기에는 생명농업을 하는 회원 간에 정보교환의 친목모임 성격이 짙었으나, 1995년 경기도 분당에 솔뫼 직판장 푸른마을을 개장하고 정 신부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인천, 부천, 시흥, 예수회 후원회 등에 판매장을 확장했다.

정 신부는 회원들이 생산한 배추, 고추, 토마토 등의 판매를 위해 매주 일요일 꼭두새벽부터 인천, 서울, 부산의 성당들을 다니며 좌판을 벌이고 생산품을 판매했다.
 

정일우 신부가 솔뫼농장 공동작업정에서 유기농 농산물을 담는 종이상자를 접고 있다.

ⓒ 사진제공=김의열 씨
또한 정 신부는 지금 어울림터가 자리 잡고 있는 이평리 땅을 공동으로 구입하는 데 큰 물질적인 도움을 줬다. 농장 회원 각자가 출자한 금액이 땅값에 턱없이 못 미치자 정 신부는 팔을 걷어 부치고 평소 영신수련 지도를 통해 잘 알고 지내던 부산교구 신부님들을 비롯해 여러 지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호소해 당시로서는 거액인 2천만 원이 넘는 돈을 모아다 줬다.

이 돈으로 농장은 무난하게 공동의 땅을 장만하고 거기에 정부 지원사업을 받아 퇴비장과 작업장, 농산물 집하장 등 여러 시설을 만들어 1996년 솔뫼유기농업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정 신부는 농산물판매를 위해 TV방송에도 출연하고 도시성당과 직거래를 위해 노력했다. 이곳에서 괴산군 주민이 됐다.

김철규 씨는 "솔뫼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가업으로 농사를 짓게 됐지만, 1994년 농약중독으로 온 몸이 마비되고서야 유기농업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면서 "관행농법의 폐해를 깨닫고 생명을 살리는 농사법을 함께 고민하며 유기농업을 실천해나갔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정 신분님이 솔뫼농장에 처음으로 우렁이를 가지고 와서 유기농으로 벼농사를 시작했다"며 "처음에는 우렁이를 잘못 가지고 와서 실패를 봤다"고 상기했다.

그러나 "다음해는 우렁이 종자를 잘 골라서 와서 벼농사에 우렁이농법이 적용돼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게 됐다"면서 "신부님이 우렁이 농법을 시작하면서 농장 회원들도 우렁이 농법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결국 솔뫼농장의 모든 논농사가 우렁이 농법으로 바뀌게 됐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 씨는 "처음 배추와 무를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만 그동안 농약 등으로 땅심이 죽어서 좋은 농산물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을 신부님이 알고 천연퇴비를 만들어 밭을 살려내도록 용기를 주셨다"면서 "그동안 유기농으로 농사를 져보지 않은 주민들을 위해 물질적,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정 신부를 기억했다.

정 신부는 솔뫼농장 주민에게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것을 '생명'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농약을 뿌리면 농부도 죽고, 땅도 죽고, 마침내 농산물을 먹은 사람도 죽는다며 유기농업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정일우 신부가 마을주민과 어울려 막걸리를 먹고 있다.

ⓒ 내친구 정일우 캡쳐
솔뫼농장 초창기에 총무를 보던 김의열 씨는 "정 신부님은 낙천적인 기질의 자유로움과 넉넉함을 가진 재미있는 분이셨다"면서 "항상 장난 끼 넘치는 익살과 해학으로 마을 주민들을 즐겁게 했다"고 기억했다

이어 "신부님은 파란색 운동복을 즐겨 입고 검정 고무신을 신고 마을주민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고 언제나 소탈한 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번은 마을잔치의 돼지 잡을 때 한 주민이 망치로 돼지의 급소를 쳐 죽이려 할 무렵 신부님이 녹음테이프 하나를 가져와 음악을 틀었는데 '짜자 쟌 쟌~'으로 시작되는 베토벤의 '운명'이었다"면서 "신부의 가식 없이 어울리는 진솔한 모습에서 뜨거운 인간애를 느꼈다"고 말했다.

정 신부는 미국 땅에서 태어났지만 어느 결에 한국 사람이 됐다. 진짜배기 한국사람 말이다. 함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친구들에게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지, 순간마다 더 재미있고 더 웃으며 노는 듯이 살려면 어찌해야 하는지를 삶으로 보여 줬다.

솔뫼농장은 1996년 영농조합법인으로 탈바꿈해 공동으로 땅을 장만해 본격적으로 유기농업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유기농업으로 생산된 건고추의 판로를 찾다가 1998년 청주 한살림에 공급하면서 이후부터 솔뫼농장에서 생산되는 유기농산물과 1차 가공품을 한살림에 전량 납품하고 있다.

솔뫼농장은 찹쌀, 토마토, 고추, 블루베리, 오미자, 수세미, 늙은 호박 등의 1차 유기농산물 전량을 한살림에 공급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고추장과 메주 등을 생산해 한살림에 납품하고 있다.

솔뫼농장이 생산한 제품이 모두 한살림에서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면서 솔뫼농장은 한살림과 함께 커왔다.

현재 솔뫼농장은 괴산군 생명농업의 한 뿌리를 깊이 내리며 유기농업의 전령사로서 톡톡히 해내고 있다.

솔뫼농장은 공동체의 다양한 활동과 도농교류행사들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없애는 매개 역할도 하고 있다.

또한 2013년 마을기업으로 지정받으며 유기농산물 가공사업을 실시, 농가소득을 높이면서 지역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해내며 농촌 마을기업의 성공모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편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에 묻힌 정일우 신부는 지난 2014년 6월 2일 오후 7시 40분 선종했다.

정 신부는 그동안 빈민운동에 투신해 복음자리마을, 한독주택 마을, 목화마을 등을 건립하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1986년에는 제정구 전 의원과 함께 막사이사이상을 공동수상했다.

예수회 한몸공동체 초대 원장을 맡았으며, 1994년 괴산에서 누룩공동체를 만들어 살다가 2004년 64일간의 단식기도 중 쓰러져 병고를 치르다 선종했다.

괴산 / 김윤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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