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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전 충북문인협회회장

 "내가 남을 배신할지언정 남이 나를 배신하지는 못하게 하겠다."

 젊은 조조가 쫓기는 몸이 돼 아버지 친구 집에 남몰래 스며들었다. 밖에서 그 집 사람들이 수군대며 칼을 가는 소리를 엿듣고, 자신을 헤치려는 것을 눈치채고 그가 먼저 재빨리 칼을 뽑아들고 그들의 목을 모조리 베었다. 그러나 그들은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칼을 갈아서 돼지를 잡으려한 것이었다. 그것을 뒤늦게 안 조조가 그때 내뱉은 말이었다.

 그 후 조조는 많은 군대를 거느린 지휘관이 돼 수많은 전장을 누비는 동안 한번은 군량미가 바닥나서 전투를 계속 할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명분도 없이 무작정 후퇴할 수도 없었다. 담당 장교를 불러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 물으니 되를 작은 걸로 속여서 쓰면 된다고 대답했다. 조조는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되를 속였다는 소문이 퍼져 단박에 군인들이 들고 일어나 사태가 심각해지자 조조는 그 장교를 다시 불러놓고 "저 분노한 군사들을 진정시키려면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 네 목숨을 내놓는 것이다." 하고 그의 목을 쳐 장대에 높이 걸고 "이놈이 되를 속여 군량을 착복한 죄를 물어 참수했다."며 크게 소리쳐 소란을 진정시켰다.

 또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유비의 본거지 한중을 뺏기 위해 침략했다. 그런데 유비군은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뜻밖에도 거세가 저항하자 그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그러는 중에 저녁상을 받으니 먹을 것이 없는 닭갈비 즉 계륵이 상위에 올라 있었다. 때마침 일직 장교가 그날 밤의 암호를 물었다. 그는 얼결에 계륵, 계륵하고 중얼거렸다. 그 암호를 전해들은 양수라는 머리가 뛰어난 문관이 허허 웃으며 갑자기 짐을 쌌다. 모두 의아해서 그 까닭을 물었다.

 "계륵이란 먹자니 먹을 게 없고 버리자니 좀 아까운 닭갈비인데 결국 버려지는 존재니 곧 후퇴할거야."

 그러자 너도나도 우루루 모두 다 짐을 챙겼다. 그렇게 온통 군영이 술렁거리자 놀란 조조가 떨쳐 일어나 그 사유를 캐물어 양수의 짓이라는 것을 알아내 마침내 그의 목을 떨어뜨렸다. 군기를 문란 시켰다는 핑개를 댔으나 사실은 자신의 속마음을 귀신같이 꿰뚫어 보는 양수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조조군은 후퇴했다.

 그와 정반대의 에피소드도 많다. 큰 전투를 눈앞에 두고 조조가 작전회의를 열었다. 한 장군이 강경하게 말했다.

 "당장 쳐들어가서 단숨에 적의 급소를 찔러야 대승을 거둘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이번에는 절대로 선제공격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다른 참모가 펄펄뛰며 반대했다. 그러나 조조는 강력하게 공격을 명령했다. 결과는 대 참패였다. 조조는 씩씩대며 이번 공격을 반대한 참모에게 "네가 참으로 현명했는데도 내가 우둔해서 받아들이지 못했다."하며 큰 상을 내렸다. 공격을 주장한 장군에게는 "용감하게 공격했고 잘 싸워서 전군에게 모범을 보였다."며 또 큰 상을 내렸다.

 조조가 위왕에 즉위할 때 흉노로부터 사자를 인견하게 됐다. 키가 작고 볼품없는 자신을 대신해 풍채와 용모가 뛰어난 최염이라는 명망 높은 사람을 대신 왕의 자리에 앉혔다. 조조는 칼 차고 왕을 호위하는 가짜 호위병으로 왕곁에 서 있었다. 그러고 나서 정보원을 시켜 위왕의 풍모가 어떠냐고 물었다. "아주 훌륭했다. 그런데 그 옆에서 칼 차고 서있던 호위병이야말로 영웅이었다."고 말했다.

 조조는 218년 임종에 앞서 아들 조비에게 유언했다. "내 무덤을 전국에 72개를 만들고 동시에 장례를 치르되 봉분과 비석을 세우지 말고 평장으로 하고 금 조각 하나라도 무덤에 넣지 말라." 그는 벌꾼들과 많은 사람들을 거의 천년 가깝도록 따돌리고 자신을 지켰다 한다.

 19세기 말쯤이던가 그의 무덤이 하남성에서 발견돼 후세 사람들이 뒤늦게 왕릉으로 만들어 추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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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