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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12.11 17:33:41
  • 최종수정2018.12.11 17:45:30

김경숙

오송도서관 운영팀장·수필가

 추위에 움츠린 몸을 일으켜 세운다. 기지개를 쭉쭉 켜며 창밖을 내다본다. 새빨갛게 농익은 산수유가 흩날린 눈발에 살포시 덮여 있다. 햇살에 녹은 눈은 빨간 산수유 열매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 탱글탱글한 붉은 산수유 열매와 수정처럼 맑게 빛나는 물방울. 요염하기까지 하다.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무심한 나였건만. 어쩌면 저토록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제 작별을 고할 때가 다가오는데도 자신을 탐하지 않은 서러움으로 붉은 피를 토해내는 건 아닐까? 일 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바라보며 살아왔건만, 단 한 번도 다가가지 못한 나. 그런 나를 짝사랑이라도 해온 건 아닐는지. 서로를 갈라놓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따스한 손길을 그리워했을까! 더 이상은 애끓는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한파를 핑계 삼아 저토록 매혹적인 모습으로 유혹하고 있는 걸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보내온 갖가지 선물들을 떠올려 본다. 대지를 물들인 여린 연둣빛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전에,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며 다가온 산수유. 아, 예쁘다! '꽃 대궐이 여기로구나'라고 착각하게 하든 소담스러운 꽃송이들. 일상적인 사무(事務)에 한참 동안 정신을 빼앗겨 지치고 메마른 가슴에 단비를 내려 주 듯. 나른한 봄날을 가슴 설레게 했다. 주변의 나비와 벌들을 불러와 환상적인 곡예와 노래도 들려주던 너였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를 위해 분장한 너의 모습. 언제부터 나와 기다리고 있었을까? 싱싱한 파란 잎으로, 충혈된 눈의 피로도 풀어줬지. 무더운 열대야의 긴긴밤에도 하나, 둘 붉게 영근 열매는 생명의 신비로움을, 자연의 위대함을 알게 해 줬지. 시계추에 몸을 맡기고 일상 속에 살아가는 내게 보여준 너의 또 다른 모습. 잎들은 다 벗어던지고, 그 잎 속에 숨어 있던 열매들이 고혹적인 자세로 내 앞에 '짠'하고 나타났지. 터질 듯이 탱탱한 새빨간 육질의 곱디고운 부드러운 살결. 네게 다가가 한번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었지. 그래도 창문 넘어 있는 네게 다가가지 못했던 나. 얼마나 매정했던가!

 이런 표현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 어찌 산수유 너에게만이었겠니? 매서운 찬바람이 살갗을 거칠게 파고들 때면 늘 보이는 모습들. 차가운 방바닥에 하얀 입김이 피어나는 단칸방에서 온몸을 움츠린 모습. 세상은 변하고 모두가 풍요로움 속에 넉넉히 살아가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따스한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 그런 모습을 보아도 남의 일인 양 넘겨버린 나의 무정함. 너를 바라보며 뉘우친다. '그냥 바라만 봐서는 안 되는 거였어. 눈길을 주고 다가가야 했어.'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너처럼 묵묵히 대가 없는 사랑을 베풀기만 했던 아버지이고, 어머니였겠지! 다른 사람들이 올려놓은 사랑의 온도탑에 '아직은 정이 있는 살만한 세상이네'라고 자위(自慰)하던 나를 채찍도 한다. 구세군 자선냄비를 찾아가고, 사랑의 열매도 손에 넣던 나의 옛 모습을 소환해야겠다. 이제 문을 열고 네게 다가가 손도 내밀어야겠다.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시름시름 말라 다 떨어진 후, 후회하지는 말아야지. 받기만 하고, 바라만 보던 생각만 하던 소극적인 나를 벗어던져야겠다. 마음속에 품고만 있으면 뭣하랴. 표현을 해야지.

 하루하루 함께 생활하며 나의 변화무쌍한 민낯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과 직장 동료들.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겠다. 한 공간에서 호흡하는 그들을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따스한 손길로 마음을 어루만져 주리라. 답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고. 인생을 알아가는 삶의 깨달음은 늘 가까이에 있다고. 선각자들이 들려주는 목소리가 빨간 산수유 열매에 달려 있는 물방울에 동글동글 맺혀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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