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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12.03 17:46:40
  • 최종수정2018.12.03 17:46:40

이찬재

수필가·사회교육강사

 꽃의 향기는 십리(十里)를 가고, 말의 향기는 백리를 가지만, 인품의 향기는 만리(萬里)를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신 것도 아니고, 명성이 높은 분도 아닙니다. 어느 시골 고등학교 앞에서 '할매 밥집'을 운영하면서 누룽지할머니로 유명한 할머니의 따뜻한 사람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한편의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느 주부가 저녁에 남편이 누룽지를 끓여 먹자는 말을 듣고 눌려놓은 누룽지를 끓이며 10여 년이 지난 학창시절의 실화를 적은 글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집이 시골이었던 저는 고등학교 삼 년 내내 자취를 했습니다. 월말 쯤 집에서 보내 준 돈이 떨어지면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하곤 했어요. 그러다 지겨우면, 학교 앞 밥 할 매집에서 밥을 사 먹었죠. 밥 할매집 에는 언제나 시커먼 가마솥에 누룽지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어요. "오늘도 밥을 태워 누룽지가 많네. 배가 안 차면 실컷 퍼다 먹거라! 이 놈의 밥은 왜 이리도 타누!" 저는 늘 친구와 밥 한 공기를 달랑 시켜놓고 누룽지 두 그릇을 거뜬히 비웠어요. 그런데 하루는 깜짝 놀랐습니다. 할머니가 너무 늙으신 탓인지 거스름돈을 원래 드린 돈보다 더 많이 내 주시는 거였어요.

 '돈도 없는데 잘 됐다. 이번 한 번만 그냥 눈감고 넘어가는 거야. 할머니는 나보다 돈이 많으니까…' 그렇게 한 번 두 번을 미루고 할머니의 서툰 셈이 계속되자 저 역시 당연한 것처럼 주머니에 잔돈을 받아 넣게 됐습니다. 그러기를 몇 달, 어느 날 밥 할매집엔 셔터가 내려졌고 내려진 셔터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어요. 며칠 후 조회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단상에 오르시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모두 눈 감아라. 학교 앞 밥 할매집에서 음식 먹고 거스름돈 잘못 받은 사람 손들어라."

 순간 나는 뜨끔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 부스럭거리며 손을 들었습니다. "많기도 많다. 반이 훨씬 넘네!" 선생님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죠. "밥 할매집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 아들에게 남기신 유언장에 의하면 할머니 전 재산을 학교 장학금에 쓰시겠다고 하셨단다." 그리고 선생님은 잠시 뜸을 들이셨어요. "그 아들한테 들은 얘긴데 거스름돈은 자취를 하거나 돈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에게 일부러 더 주었다더라. 그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그날 끓일 누룽지를 위해 밥을 일부러 태우셨다는구나. 그래야 애들이 마음 편히 먹는다고." 그날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데 유난히 '밥 할매집'이라는 간판이 크게 들어왔어요. 나는 굳게 닫힌 셔터 앞에서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할머니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할머니가 만드신 누룽지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어요. 당신의 아름다운 사랑이 소리 없이 내 가슴에도 다가옵니다."이런 내용의 글입니다.

 학생들이 밥값으로 낸 돈보다 더 많은 거스름돈을 주신 할머님.

 거스름돈을 잘못 받았으면 할머니께 되돌려 드려야 정직한 학생들인데 누룽지 할머니께서는 손녀 같은 학생들에게 용돈으로 주고 가셨습니다. 할머니다운 자비심을 베풀며 살다 가셨습니다. 배고픈 아이들이 마음 놓고 먹을 수 있게 일부러 밥을 태워 누룽지를 해 놓고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하신 누룽지 할머님. 밥집을 운영해 번 돈을 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유언은 삭막한 세상을 훈훈하게 녹여주는 감동이었습니다. 할머니의 베푸는 삶에 경외(敬畏)심마저 들어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낙엽 진 황량한 초겨울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베푸는 삶을 살다 가신 천사 같은 할머니의 인품의 향기는 오랜 세월 전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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