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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어제가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 이미 지난달 중순 설악산에서 첫눈 소식이 있더니 엊그제는 전국에 눈발이 날렸다. 소록소록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첫눈. 자주 만나지 못하는 문우(文友)들이 술 한 잔하자고 극성이다.

 예부터 눈은 시인들의 단골 소재가 됐다. 한 때 청주목에 갇혀 형고를 치르던 고려 말 목은 이색(牧隱 李穡)은 송도의 겨울 설경을 차가운 은빛바다로 노래했다.

 기울어져 가는 고려국의 운명을 걱정한 것인가.

 송악산 푸르름에 저녁 구름 물들더니(松山蒼翠暮雲黃) / 눈발 흩날리자 이미 해는 저물었네(飛雪初來已夕陽) / 밤들면 혹시나 눈이 그치려나(入夜不知晴了未) / 새벽 은 바다에 눈 빛이 차갑겠지(曉來銀海冷搖光)

 주로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개경 명기 황진이도 눈을 보며 망한 고려의 모습을 그렸다. 비록 기생이었지만 그녀의 가슴 속에는 강한 역사의식이 넘친다.

 눈 오는 날은 전조의 모습이요(雪中前朝色) / 차가운 종은 고국의 소리(寒鐘故國聲) / 시름에 젖어 남루에 혼자 섰으니(南樓愁獨立) / 남은 성터엔 저녁 연기 그윽하네(殘廓暮烟香)

 일제강점기 쓴 김진섭의 '백설부'는 순백의 눈을 예찬한 명문장이다. 교과서에 까지 실린 이 글을 기억하는 중년들이 많을 것 같다.

 시인은 세상의 모든 것을 하얗게 덮어 순결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정화시키는 백설의 미학을 유아한 필치로 담아냈다.

 함박눈이 대지를 덮으면 이 백설부가 생각난다.

 눈을 사랑한 시인이 한 둘이 아니지만 충남 강경이 고향인 고(故) 박용래 시인은 특별했다.

 박 시인은 필자의 중학교 국어교사였다. 선생은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들어와 한 번도 반말을 쓰지 않았다. 회초리를 들고 교실에 들어서 험한 말로 훈육하던 다른 교사들과는 다른 모습이어서 다들 좋아했다.

 성년이 돼 우연히 시인을 대전의 한 대포집에서 만날 수 있었다.

 첫눈이 내리던 겨울이었는데 목에는 예쁜 털목도리를 두르고 나오셨다. 명문 대학에 다니는 딸이 정성스럽게 짜준 것이라고 애지중지 했다.

 박 시인은 눈물이 많았다. 술을 한잔하면 금방 눈가가 젖는다. 만나고 싶었던 문우나 제자를 만나니 즐거워 눈물을 흘린 것이다.

 대전의 한 시인은 '그의 눈물은 가난과 애달픔, 외로움 등 때문이 아니었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하고 어여쁜 것, 소박하고 조촐한 것,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시인의 술 친구였던 미당 서정주가 집을 찾아 왔을 때는 맨발로 나가 반기기도 했다.

 많은 시우들이 착한 시인을 사랑했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슬퍼했다.

 '싸락눈', '겨울밤'은 대표적인 시다. 오늘 날 많은 시인들이 있지만 박용래 시인처럼 맑은 심성을 가진 시인들은 얼마나 될까.

 지금 미투로 얼룩진 문단은 인간적인 교감마저 끊기고 경계와 적막만이 흐른다. 시인이 살아계셨다면 어떤 눈물을 흘렸을까.

 가난한 시기에 서민들은 함박눈을 보면서 하얀 쌀이 펑펑 내렸으면 했다. 올 소설의 눈은 국민들의 어려움을 위무하고 극복하는 서설(瑞雪)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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