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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

충북도종합사회복지센터장

 권리와 의무는 두 짝의 양말과 같다. 함께 있어야 비로소 온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심정으로 계절이 바뀌면 대청소 끝에 버릴 물건과 채울 것들이 늘상 분주하게 마음을 훈육한다.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지만 불필요한 것들을 줄이고 언제든 훌훌 털고 갈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버리고 버려도 어느새 쌓이는 물건들 때문에 매년 반성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버린 옷가지가 리어커 분량이라면 새로 살 옷가지에 1t 트럭만큼의 설레임이 있으니 그 또한 어찌할 수 없는 우매한 인간의 한계이다. 그렇게 주말 대청소를 하던 중에 너덜너덜해진 어릴 적 앨범을 발굴했다. 그야말로 '발굴'이 맞는 표현일 게다.

 앨범에는 볼 살이 터질 듯 홍조를 띄고 있는 어릴 적 나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박장대소 하는 사진 속 학생은 아직도 거기에 그대로였다. 청바지, 청 자켓, 친구들과 갖은 폼을 잡고 찍은 소풍사진과 수학여행 사진도 있다. 추억하건데 그때의 삶은 심플했다.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매점에 가서 뭘 사먹을까 하는 고민과 용돈을 많이 받길 희망하면서 그저 친구들과 어울리는게 마냥 좋기만 하던 심플한 시간들이었다. 선생님이 엄히 말씀하시는 규정보다는 친구와 의리 때문에 '야자(야간자습)'를 건너뛰고 학교 앞 분식집으로 돌진했던 그야말로 우정이 빛나던 시기였다. 다른 건 기억나질 않는데 학창시절 선생님 별명과 이름은 아직도 명료하게 추억된다. 내 학창시절과 만나는 시간은 결코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는 그 시간이다. 어떤 일이나 다 때가 있다고 했던가. 그 시절에는 세상 사는게 만만하고 거침이 없었다.

 몇 장을 넘기니 여전히 20대의 청춘의 모습으로 후배 모습이 있다. 몇 년 전, 삶을 놓아버린 후배와 포장마차 안주에 알콜을 담은 종이컵을 두고 학교 정문 앞에서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학과 후배들과 자정을 넘긴 시간에 찍은 사진이라는 기억도 어제 일처럼 명확하다.

 나도 나이를 먹는 것일까? 그때가 가장 찬란한 인생이었다고 느껴지니 말이다.

 앨범에 흑백 결혼사진 속 아버지는 헌헌장부이셨고 어머니는 고왔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나의 삶도 시간을 뒤로 하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 맞이할 시간보다는 뒤로 추억해야 할 시간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으로 나이 들면서는 공간보다 시간이 중요하다고 한다. '추억'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마음의 복지(福祉)일 수도 있다. 추억은 일종의 자신과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앨범 속에 차곡차곡 정리해 놓은 사진은 세월이 흘러 빛바램 속에 담긴 옛 추억을 아련히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더러 인화된 사진 뒷면에 기록 된 몇 년 몇 월 누구와 함께 라는 글씨조차도 너무나 반가울 때가 있다. 지금은 고성능 카메라를 탑재한 스마트폰이 보급화 되면서 구태여 앨범에 사진을 인화해서 보관하지 않기에 더없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어느새 사진관이라는 곳을 찾기도 쉽지 않게 됐다. 추억은 성장하는 식물과 같다. 어느 쪽이나 다 싱싱할 때 심어 두지 않으면 뿌리를 박지 못하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싱싱한 젊음 속에서 싱싱한 일들을 남겨 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추억이 나의 노후복지이며 인생의 지문이기 때문이다. 주말 대청소 중에 조우했던 그 시간들은 잊고 있었던 고마운 사람들과 친구들을 만났던 시간이었다.

 내게도 제법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생각에 위로가 됐던 시간이었다. 나이 들수록 덜어내라고들 하지만 자꾸 쌓아야 하는 것도 있다.

 그래서 청춘들의 근거 없는 열정과 도전일지라도 우리사회는 그들에게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 인생선배가 줄 수 있는 그들의 노후복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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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