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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오송도서관 운영팀장·수필가

 산길을 걷는다. 한참을 걷다 보니 두 다리가 뻐근해온다. 바위에 털버덕 앉아 뭉친 두 다리를 주무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숲길이 적막하다. 시끌벅적 사람들의 수다가 그리울 정도로 너무도 스산하다. 바람에 흩날리며 합창하는 나뭇잎 소리가 묘한 기운을 뿜어낸다. 어디선가 멧돼지라도 나올 것만 같아 길을 서두른다.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시원하다 못해 쌩쌩, 찬 기운에 몸을 움츠린다. 바위를 세차게 때리며 퍼져나가는 물보라가 장관이다. 바위는 시원할까? 아니면 고통스러울까? 쉼 없이 쏟아지는 물의 압력을 이겨내려고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 듯 느껴진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구멍도 생기고, 깎여 떨어져 나간 모서리는 칼날처럼 날카롭다. 장작을 패도 될 성싶다. 물보라가 얼굴로 튕겨온다. 무지개를 그리며 날아든 물보라를 보석인 양 손을 펴 잡아본다. 금세 손바닥을 적시며 사라지고 만다. 바위를 깎는 힘찬 폭포수라도 땅에 떨어져 시간이 흐르면 그 기세도 약해지는구나. 골짜기를 따라 흘러 내려가는 동안 수많은 돌멩이를 만나, 그 돌 틈들을 수없이 돌고 돌아 흐르겠지. 그러면서 동글동글 졸졸졸 흐르는 정겨움도. 아가의 솜털처럼 한없이 보드랍고 감칠맛 나는 감로수도 만들었겠지. 누군가는 힘찬 폭포수 소리에 속이 다 시원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칼날에 베일까 노심초사일 수도 있겠구나! 같은 물이라도 흘러내리는 위치와 상황에 따라,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끼치는 자연의 순리와 이치를 배운다. 살며시 눈을 감아본다. 토사와 함께 거침없이 포효하는 붉은빛 물살, 홍수(洪水). 도시를 삼켜버릴 듯 벌름거리는 무서운 해일(海溢). 봄 햇살 아래, 얼음 속에서 조용히 흐르는 개울 소리. 많은 광경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어찌, 물만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몇 해 전만 해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빨리빨리"를 외치며 거친 쇳소리를 마구마구 내뱉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지체를 해서 학교에 늦게 되면, 송곳 같은 말들로 아이들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 그뿐이랴. 남편과 의견이 충돌하면 거친 숨소리를 몰아냈다. 평소에는 올라가지도 못하는 음역대를 넘나들며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심장을 후벼 파 듯, 날 선 칼날을 마구 휘두른 다음이라야 직성이 풀린 적도 있었다. 그 후엔 영락없이 살얼음판을 걷듯 냉전의 시기가 펼쳐진다. 집안은 시베리아 찬 공기가 몰려와 입도 얼어붙고, 두 손은 꽁꽁 얼어 터질 듯 무감각해졌다. 느닷없이 휘몰아친 강한 비바람에 휩쓸려 황폐해진 논과 밭의 농작물처럼, 가족들은 삶의 여유도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고 축 쳐졌다. 목소리가 주는 위력이 얼마나 큰가! 수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내 목소리에 기분을 상했던 얼굴들을 떠올리니 낯이 뜨거워진다. 조금이라도 소리가 크면 잠자는 아이가 놀랄세라, 소곤소곤 속삭이던 때도 있었건만.

 당차고 힘차게 말해야 할 때가 있다. 그건 나보다 약자에게 말할 때가 아닌, 의견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주장해야 할 때. 그 목소리는 다른 이들에게 아픔을 주고 상처를 주는 소리가 아닌, 진정성이 있는 목소리여야 한다. 그런 목소리가 많아져 세상에 메아리가 돼 울려 퍼질 때. 조화롭고 아름다운 화음으로 나를,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을까? 때로는 속삭이듯 고요히 흐르는 봄 햇살 속의 개울소리처럼. 때로는 한여름, 시원한 물줄기로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청량제와 같은 예술의전당 옆 폭포수처럼 말이다. 말없이 흘러내리는 폭포수의 웅장함. 물보라가 만들어내는 물방울들의 유희. 지나온 삶 속에 묻어있는 내 목소리. 그 들이 함께 어우러져 들려주는 소리가 이채롭다. 자연이 들려주는 물소리에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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