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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영

수필가

 모임에서 한 달 전부터 가을 여행을 계획했다. 청주, 음성, 서울 등에서 온 여덟 명의 아낙들이 부석사의 단풍을 보기 위해 영주에서 합류했다.

 처음 우리를 반긴 것은 분수공원이다. 인공폭포에서는 하얀 포말이 쏟아지고 분수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시선을 끌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저마다의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 순간만큼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된다. 부석사로 오르는 길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그 길에는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사이좋게 손잡고 있다. 십수 년 전 대학교 학우들과 왔을 때 단풍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황홀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를 생각하며 오늘을 기다렸는데 은행나무는 맨몸으로 서 있다. 땅에서 태어난 몸이라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순리이리라. 그러나 단풍나무는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으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어 위로가 됐다.

 일주문을 향해 걷고 있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잘 알려진 아름다운 절 부석사를 만나러 가는 마음은 즐겁기만 했다. 부석사 전경이나 부속 건물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최순우 작가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란 수필에서 '사무치게 고마운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했을까. 우중 속이지만 같이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은 것은 모두 나와 같은 생각 때문이리라.

 큰아들 초등학교 2학년 때 자모로 만난 사람들과 23년째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아이들은 결혼하고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됐다. 우리들은 가을 단풍처럼 곱게 늙기를 바라며 천천히 걸어가는 중이다. 흙길이 좋다고 말하는 친구의 상기된 목소리에 기쁨이 묻어있다.

 단풍에 마음을 빼앗기며 오르다보니 어느새 일주문이 보인다. 오래된 건축물에서 정을 느낀다. 색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속에서 역사를 읽는다.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는 돌담에 이끼가 묻었다. 선조들은 돌 한 개 한 개를 쌓으며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했을 것이다.

 돌로 된 계단을 오르고 천왕문을 지나 무량수전 마당에 오른다. 비가 많이 내리는데도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다. '무량수전'이라고 쓰여있는 빛바랜 현판을 보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정성을 모아 절을 한다. 나도 간절한 마음으로 손을 모은다.

 우리는 저마다의 생각으로 부석사 경내를 둘러본다. 단풍잎이 비에 젖고 있다. 모든 나무는 조용히 겸허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수도승 같다. 무량수전의 지붕 처마 아래서 배흘림기둥을 손으로 쓰다듬어 본다. 거칠 것 같은 나뭇결이 비누 거품처럼 부드럽다. 문득 돌아가신 엄마 생각에 코끝이 시려온다. 나는 또 언제 올 수 있을까 생각하며 많은 것을 눈에 담으려 애를 쓴다.

 우리들의 삶을 바라보면 그 모습이 무량수전의 빛바랜 단청을 닮았다. 화려하거나 호들갑스럽지도 않다. 넘치거나 모자라지도 않다. 나는 그런 모습이 좋다. 순한 어머니의 얼굴이라 좋고 소박한 꿈을 이루려 노력하는 모습도 좋다. 작은 욕심을 품고 있다 해도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너그러움이 있기에 그 모습 또한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오랜 세월과 함께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절 부석사에서, 오늘 함께한 오래된 인연들이 아름답고 소중하다. 두 시간 넘게 달려온 영주에서, 자연의 일부가 돼 같이 보낸 오늘 하루의 시간이 좋은 추억으로 남길 바란다.

 만추의 오후 시간이 널을 뛰는 것 같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종종걸음으로 경내를 빠져나간다. 올라올 때 보지 못했던 화려한 단풍나무 아래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자리를 잡는다. 한 곳을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이 카메라 렌즈 속에서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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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