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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중

전 단양교육장, 소설가

 얼마 전, 나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내 아내의 권유에 의해서였습니다. 어느 날, 난데없이 아내가 말했습니다.

 "당신, 그녀를 사랑하잖아요. 인생은 짧아요. 당신은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해요."

 "근데, 여보. 난 당신을 사랑해."

 "알아요. 하지만 당신은 그녀도 사랑하잖아요."

 내 아내가 만나라고 한 다른 여자는 실은 내 어머니였습니다. 미망인이 되신 지 벌써 몇 년, 일과 가족을 핑계로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같이 영화도 보고 저녁식사도 하자고 제안했지요.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냐? 혹시 나쁜 일은 아니지?"

 "그냥 엄마하고 단둘이 저녁도 먹고 영화도 보고 싶어서요. 괜찮겠어요?"

 잠시 후, 어머니는 덤덤하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러자꾸나."

 다음날 저녁, 일이 끝난 뒤 차를 몰고 어머니를 모시러 갔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첫 데이트를 하기 전에 갖게 되는 두근거림이라고나 할까요. 도착해서 보니 어머니도 다소 들떠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집 앞에 나와 기다리고 계셨는데, 근사한 옛 코트를 걸치고 머리도 다듬으신 모양새였습니다. 코트 안의 옷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두 분의 마지막 결혼기념일에 입으셨던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이 환한 미소로 가득했습니다.

 "친구들에게 오늘 밤에 아들과 데이트하러 간다고 했더니 모두들 자기 일인 것처럼 들떠 있지 뭐냐."

 어머니와 함께 간 식당은 최고로 멋진 곳은 아니었지만 종업원들이 기대 이상으로 친절했습니다. 자리에 앉자 어머니가 메뉴를 읽어 달라고 하시더군요. "내 눈이 옛날 같지 않구나" 하시며. 메뉴를 반쯤 읽다 눈을 드니 어머니가 사랑스런 눈길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네가 어렸을 때에는 내가 너한테 메뉴를 읽어 줬는데."

 "오늘은 내가 읽어드릴게, 엄마."

 그날 밤, 우린 즐거운 대화를 나눴지요. 특별한 주제도 없는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마침내 대화의 밑천이 바닥나더군요.

 "다음에 또 오자꾸나. 단, 다음번은 내가 낸다는 조건이야."

 어머니를 다시 댁에 모셔다 드리고 헤어지려니 발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안고 볼에 키스하며 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씀드렸습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오자 데이트가 어땠는지 아내가 물었습니다.

 "멋진 저녁이었어. 그런 제안을 해 줘서 고마워. 정말이지, 기대 이상이었어."

 며칠 후, 사랑하는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너무 순식간이었고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어머니와 내가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식당에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아무래도 다음 번 데이트 약속은 지킬 수 없을 것 같구나. 정말 그럴 것 같다. 그러니 이번엔 너와 네 처 둘이서 너와 내가 했던 것처럼 함께 즐겼으면 한다. 너희 식사비용은 내가 미리 지불했다. 그리고 너와 내가 함께 했던 그날 밤의 시간들이 내게 얼마나 뜻깊은 일이었는지 네가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엄마가.'

 그 순간, 나는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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