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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11.05 17:12:58
  • 최종수정2018.11.05 17:12:58

송연준

영동군선거관리위원회 지도홍보주임

언제 폭염이 있었느냐는 듯이 쌀쌀한 바람에 두꺼운 옷을 꺼내 입는 계절이 왔다. 변덕스러운 계절 따라 이것저것 사야 할 것도 늘어나서 인터넷 사이트를 여기저기 뒤적거리게 된다. 신발을 하나 살까 해서 쇼핑몰의 여러 상품을 검색하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발이 편해서 유명한 외국회사 신발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이 신발회사는 소비자가 한 켤레를 사면 회사에서 한 켤레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방식으로 판매를 한다. 얼핏 생각하면 적자를 면치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이미 1천만 켤레가 넘는 신발을 판매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불법노동력 착취를 하지 않는 공정무역커피,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화장품,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핸드폰케이스 등 가격은 좀 높지만 사회적 윤리까지 고려하는 착한 소비가 대중을 설득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더 이상 물건의 품질과 가격만을 따지는 것이 아닌 가치까지 고려하는 똑똑하고 현명한 소비자들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착한 소비는 없을까?

정치후원금 제도라는 것이 있다. 정치후원금은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후원회를 통하여 기부하는 후원금과 개인이 선관위에 기탁한 후 선관위가 일정한 요건을 갖춘 정당에 국고보조금 배분비율에 따라 지급하는 기탁금이 있다. 이는 소액 정치후원금 기부문화를 정착하고 모금과정을 공개해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마련된 제도이다.

얼핏 보면 어려운 제도 같지만, 크고 거창한 방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정치후원금 사이트(www.give.go.kr)에 들어가 후원을 하거나 가까운 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해서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기부할 수 있다. 또한 카드 포인트 통합조회 사이트에 들어가 잠들어 있는 카드 포인트를 쓸 수도 있고, 휴대폰 결제, 실시간 계좌이체를 할 수도 있다. 10만 원 이내라면 전액 세액공제를 받기 때문에 실제 나가는 돈 없이 후원할 수도 있다.

조금 수고로울 수 있지만 정치 후원금 제도는 불법뇌물을 근절하고 민주발전의 소중한 토대가 되는 제도이다. 우리가 낸 정치후원금은 깨끗한 정치자금이 되어 금권에 좌우되지 않는 투명한 정치를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참여하는 사람은 주인이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손님이다'라고 하셨다. 소비를 하면서도 사회공헌을 하게 되는 착한 선거인, 나아가 주인이 되는 방법은 멀리 있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지금 당장 정치후원금 사이트에 들어가자! 그리고, 정치후원금이라는 씨앗을 뿌리자. 후일 깨끗한 정치라는 큰 그늘을 제공해주는 나무로 자라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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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50~60대인 사람들은 모두 다 공감하는 말이다. 절실 할수록 더 노력하고, 어려 울수록 뼈를 깎는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딘 CEO들이 적지 않다. 김순구 한국감정평가사협회 회장. 그의 이력과 언변을 보면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의 표상(表象)이라는 사실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김 회장을 만나 고향을 향한 큰 그림이 무엇인지를 들어봤다. ◇한국감정평가사협회 주요 업무는 "국민 재산권 보호와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1989년 설립됐고, 2016년 법정단체가 됐다. 주요 업무로는 감정평가제도 개선, 감정평가사 지도·관리 및 연수, 국토교통부장관 위탁업무 등이 있다. 그리고 올바른 부동산 문화 정착을 위해 부동산 감동교실을 운영하고, 국민에 봉사하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자 사회공헌사업도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 ◇충북 출신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나 "저는 '마부작침(磨斧作針)'을 늘 생각하면서 자랐다. 아주 어릴 적 아버님께서 작고하셔서 홀어머님이 저를 어렵게 키웠다. 초등학교 시절 함께 자란 친구들이 아버지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