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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희

수필가

[충북일보]  음력 팔월 열엿새 날에 태어났으니 매년 추석 다음 날이 생일이다. 꼬투리 속 완두콩처럼 오 남매 중 막내로 크면서 변변한 생일상이나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 생일이라 봤자 전날 먹고 남은 탕국과 나물로 한 끼 때우면 그만이었다.

 그런 내가 첫 생일 선물을 어찌 잊으랴. 추석이 지난 얼마 후였다. 코흘리개 때부터 단발머리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녔던 친구들이 다 늦은 저녁에 나를 찾아왔다. 친구들은 생일 선물이라며 내게 흰 봉투를 내밀었다. 갑자기 찾아와 선물이라니, 뜬금없다. 오랫동안 붙어 다녔어도 우리는 서로의 생일을 챙겨준 적이 없었기에 더욱 의아했다.

 불쑥 내미는 봉투를 얼떨결에 받으려다 말고 "근데, 이게 뭐야?"

 흰 봉투와 생일 선물을 연결 짓기는 내 상상력이 적이 부족했다.

 "응, 수학여행비야."

 어쭙잖게 자존심이라도 내세우며 선물을 내칠까 봐 친구들은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제야 봉투 속에든 게 돈이고, 그 돈은 생일 선물이자 수학여행경비라는 것이 한 줄로 이어졌다. 흰 봉투 안에는 친구들이 모은 사랑이, 나의 첫 생일 선물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는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얼른 고개를 들어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은은한 달빛이 어깨동무라도 하듯 우리들 머리 위로 한 아름 쏟아져 내렸다.

 우리 학교는 다음 달에 경주로 수학여행을 갈 예정이었다. 아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어떤 옷을 입고 갈지, 어떤 계략으로 선생님을 골려 줄지 등 시답잖은 이야기로 마냥 들썽거렸다. 나는 아이들의 들레는 대화에 끼지 못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일찌감치 수학여행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부럽지 않은 척 빳빳하게 고개를 세우고 다녔지만, 예민한 여고생의 속 쓰림만은 약도 소용없었다. 쓰린 마음을 감추려 애썼는데 공허한 눈빛만은 숨길 수 없었나 보다. 지금도 친구들의 속 깊은 정으로 마련해준 첫 생일 선물이 새록새록 고맙다.

 선물을 챙기는 날이 비단 생일만은 아닐 것이다.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크리스마스, 명절 등등…. 특별한 날에 우리는 선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다.

 나는 선물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받을 때보다 줄 때의 기쁨이 훨씬 크기 때문에 그렇다. 상대에게 어울릴 만한 선물을 고르는 시간은 그이만을 생각하는 충만한 시간이다. 또, 선물 받을 이와 오롯이 함께 하는 은밀한 시간이기도 하다. 주고받는 기쁨의 순간을 생각하면 선택의 긴 시간과 다리의 통증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아들이 태어난 첫 생일, '돌'이라는 의미 있는 날이기에 여러 사람을 초대해 생일상을 차렸다. 그 후로도 명분 있는 날이면 아이를 위해 크든 작든 선물을 준비했다. 선물이 마땅치 않을 땐 손 편지라도 써서 어미 마음을 전했다. 이토록 유난스럽게 선물을 챙긴 까닭은 선물을 주고받는 것도 습관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연스레 아들은 때가 되면 내게 선물을 했다. 학창시절 넉넉지 않은 용돈을 모아 책을 선물하기도 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땐 동네 가게에서 초콜릿을 사줬다. 어느 해던가, 군대에 있던 아들이 내 생일에 맞춰 축하 메일을 보내왔다. 나중에 돈 벌면 근사한 선물을 사드리겠다는 몇 줄의 글은 어떤 생일 선물보다 값졌다. 제 한 몸도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서 어미의 생일날을 잊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추석 다음 날이 생일이다 보니 외우기는 쉬워도 제대로 된 생일상 받기는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올해도 아들 녀석이 당직이라 혼자 생일을 보냈다. 추석 연휴가 끝난 아침, 출근하는 아들이 흰 봉투를 쑤욱 내민다.

 "엄마, 생일 선물. 바빠서 선물은 못 샀고 대신 현금 이유."

 며칠 동안 내색이 없어 올해는 그냥 넘어가나 싶어 내심 서운하던 참이었다. 녀석의 서프라이즈 선물은 서운함과 행복감을 합쳐 두 배로 기쁨을 줬다.

 요즘은 번거로운 선물 대신 간편한 현금을 주고받는 실용적인 시대이다. 나는 여전히 마음과 정성이 깃든 선물이 좋다. 하지만 아들이 주는 두둑한 현찰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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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