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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완

한국문화창작재단 이사장

 일본 여행 중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들어와 TV를 켰는데 소리가 나지 않는 겁니다. 리모컨을 찾아 볼륨을 높여도 소용이 없었지요. 고장인가 싶어서 TV를 끄려는 순간, 화면의 한 남자의 모습이 시선에 들어오더군요. 두 귀에 헤드폰을 쓴 채, 음악에 심취해 있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TV는 계속 무음인 상태로 남자의 표정만을 클로즈업하여 비췄어요.

 텔레비전에서 소리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은 어색하면서도 신선했습니다. 그림의 여백 같았다고나 할까요. 그러다 남자가 헤드폰을 귀에서 떼는 순간, 헤드폰에서 강렬한 빛이 뻗치면서 그 안에 갇혀 있던 음악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빠바바 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이었죠. 가만히 살펴보니 일본의 S스피커 광고였던 겁니다. 한마디로 강렬했어요. 비록 광고였지만, 큰 스승이 죽비로 어깨를 치면서 일갈하듯 정수리를 깨쳐내는 듯했어요. 말하기를 즐기는 습성에 침묵의 마음을 일깨워 준겁니다.

 비록 잠시 동안이었지만 침묵은 그 어떤 소리보다 명쾌하면서도 마음을 서늘히 꿰뚫었습니다. 위대한 웅변이 형형색색의 그림이라면, 침묵은 한국화의 여백과 닮았죠. 빈틈없이 채색된 그림은 특정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여백은 없는 듯 있는 듯 자유롭고 편안합니다. 여백은 한 줄기 바람으로 생각을 날리듯, 부채질하듯, 표표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여백과 닮은 침묵은 또한 경청이란 말과 어울립니다.

 '지혜는 들음으로 생기고 후회는 말함으로써 생긴다.'

 영국속담입니다. 사주에도 구설수(口舌數)라는 말이 있습니다. 구설수는 말을 잘못해서 어려운 일을 겪는 것입니다. 상담을 위해 찾아오는 내방객 중에 구설수로 인해 고민하는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우리말 속담에 '세 치 혓바닥이 몸을 베는 칼'이라는 말이 있죠. 혀는 짧지만 가장 위험한 무기인 셈입니다. 혀를 잘 놀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가 하면, 혀를 잘못 놀려 힘들게 쌓아 올린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기도 합니다.

 "아빠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어느 때인지 아세요?"

 "글쎄다. 용돈을 줄 때니?"

 지난 추석 때, 오랜만에 함께 시골길을 걷다가 아들이 뚱딴지같은 질문을 해왔어요. 그저 농담으로 대답을 했는데, 아들의 대답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지요.

 "아빠가 어떤 일을 하시고 있을 때에도 제가 말을 걸면 진지하게 그 일을 멈추시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 주실 때죠."

 경청은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표시의 가장 자연스런 모습이죠. 그래서 경청은 상대방에게 깊은 신뢰를 줍니다. 친구가 많은 사람을 보면 자신이 말을 하기보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백 마디 찬사보다도 내 말을 진심으로 경청하는 이를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형상이 드러나지 않은 여백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거기에는 마치 위대한 음악의 중간에 침묵의 몇 초를 기다리는 순간과 같은 마음 졸임이 있는 까닭이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中에서

 한국화가 서양화와 분명하게 구별되는 점은 바로 빈 공간을 남겨 두는 것이죠. 여백의 미(美)인 것입니다. 비움으로 꽉 채울 수 있는 것은 어쩌면 '형상이 드러나지 않는 여백'이란 위의 말과 동일합니다. 서구의 예술 비평가들도 동양화의 여백의 미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다고 하죠. 숨결처럼 섬세한 분위기까지 담아낸, 그러므로 주변의 그림을 더욱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어요. 그것은 드러내는 형상과 보이지 않는 내면의 모습이 조화를 이뤄내는 모습인 것입니다.

 현악기의 아름다운 선율도 줄과 줄의 간격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침묵과 소리가 공명할 때 비로소 진정 아름다운 뜻이 세상에 울려 퍼지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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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테크 "깨끗한 물, 미래세대와 함께 합니다"

[충북일보] 충북 청주시에 소재한 ㈜온테크(본사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사인 2길 9 미성빌딩 A동 301호)는 상수관망 진단이 접목된 회전 워터젯 방식의 세척 공법을 가진 상수관 세척 전문 기업이다. 30여 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수도관 세척공법기술을 개발한 이광배 온테크 대표와 청주시 상수도사업본부·환경관리본부 근무 경력의 왕종일 부사장이 10여 명의 정규직 직원들, 협력사 직원들이 함께 하고 있다. ㈜온테크는 고압의 압축 공기와 물의 회전을 이용한 기체활용세척 공법을 활용한다. 해당 방식은 다양한 관 세척 공법 가운데 수행 구간이 가장 길고, 세척 사용 수량이 적으며, 높은 수질 개선 효과가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또한 연장이 길거나 이형관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왕종일 부사장은 "총알이 회전하면서 멀리 날아갈 수 있듯 공기와 물을 회전 발사체를 통해 투입해 마찰력과 추진력을 높일 수 있다"며 "다만 해당 압력을 조절하기 위해 땅 속에 있는 노후 수도관을 미리 점검하고 확인하는 작업이 필수로 수반된다. 그래야 노후관 파열 없이 안전한 진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온테크의 상수도관 세척 주요 공정은 △현장 실사를 통한 조사를 통한 실사 도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