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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10.09 15:19:56
  • 최종수정2018.10.09 19:59:44
[충북일보] 포털사이트에서 이해찬을 검색하면 무려 3만여 자에 달하는 방대한 기록이 나온다. 고작 1천자 안팎에 그치는 다른 정치인들과 격(格)이 다르다.

이해찬은 현역 최다인 7선이다. 총리와 장관, 여·야 대표까지 지낸 거물이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은 대통령 뿐이다.

학생운동과 이해찬 세대

이해찬은 조선시대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 후손으로 알려진다. 대원군(大院君)은 왕위를 계승할 적자손이나 형제가 없어 종친 중에서 이어받을 때 새 왕의 생부를 호칭하던 말이다.

흥선대원군(고종)·전계대원군(철종)과 함께 3명 뿐이다. 이들은 왕은 아니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위치에 있었다.

이해찬의 부친은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에 맞서 지방선거에서 야당 후보로 청양면장에 당선됐다. 지역 주민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던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낸 이해찬은 일찍이 서울로 상경해 덕수중, 용산고를 거쳐 서울대에 입학했다.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돼 약 1년 간 복역했다. 재야인사로 지내다가 서울대 제적이 해금되면서 1980년 복학생협의회 회장을 맡았다.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돼 투옥됐다가 성탄절 특사로 석방되기도 했다. 1985년 입학 14년 만에 서울대를 졸업했다.

이해찬의 첫 정당은 평화민주당이다. 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구 공천을 받아 민정당 김종인, 통일민주당 김수한 등을 꺾었다.

그는 서울에서 내리 5선을 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 자격으로 자신이 건설을 지휘했던 세종시에 내려와 재선에 성공했다.

이해찬에게 가장 드라마 같았던 선거는 2016년 20대 총선이다.

시작은 1988년 4월 13대 총선에서 경쟁했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과의 악연으로 볼 수 있다.

김종인 지도부는 이해찬의 지역구인 세종시를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했다. 이해찬 후보는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선택했다.

친정에서 쫓겨난 그는 새누리당은 물론, 더민주 후보와 경쟁을 해야 했다.

이해찬은 절박했다. 그런 이해찬이 꺼낸 '히든카드'가 바로 KTX세종역 공약이다.

참여정부 시절 자신의 기획했던 국가균형발전 철학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듣지 않았다. 대신 중앙부처 이전 공무원들과 세종시민들의 가려운 것을 긁어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세종역 신설이 인근 대전·충북·충남의 큰 반발을 불러왔는데도 언제나 그랬듯이 이해찬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해찬은 그동안 숱한 논란의 중심을 마다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 1998년부터 1999년까지 교육부장관으로 재임하면서,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는 무시험 대학 전형으로 바꾼다고 했다.

이후 야간 자율학습과 월말고사, 학력고사, 모의고사 등을 전면 폐지하는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특기 하나로 대학에 가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큰 정치인으로 거듭나야

19대 국회를 출입했던 기자는 같은 충청권 출신임에도 이 의원을 단 한 번도 인터뷰하지 못했다. 기자 뿐 아니라 충청권 국회 출입기자는 물론 중앙 언론들도 이 의원을 취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국회 출입기자들은 이 의원을 '버럭 해찬'으로 불렀다. 일방이든 쌍방이든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해찬은 이제 집권 여당의 대표다. 지역구 마인드에서 벗어나 큰 정치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당·정·청'에서도 맏형이라는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KTX세종역 신설은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철학에 맞지 않는다. 충청권 상생을 통해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이 대표의 고집은 국가정책의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

이 대표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계 거물의 든든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세종역 문제를 전국 17개 시·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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