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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9.26 19:57:32
  • 최종수정2018.09.26 19:57:32

이혜정

청주YWCA사무총장

 추석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명절의 증후군에 대한 기사가 쏟아진다.

 명절 최고의 성차별? "어미야, 상 차려라" "남자가 어딜 주방에"(경향신문). 명절 성차별 1위는 '여자만 가사노동'…남녀 의견일치(뉴스1). 남녀가 꼽은 명절 성차별 1위? '女만 하는 가사노동'…男 "분위기 개선 원해"(동아일보). "어미야, 상 차려라"… 명절 성차별 1위 '女 가사노동'(세계일보).

 청와대 게시판에 명절을 없애달라는 청원까지 등장했다니, 이제 명절은 온 국민을 괴롭히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것인가. 일상적으로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유독 명절에 성차별기사가 쏟아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긴 필자도 평상시에 느끼지 못했던 며느리 정체성을 1년에 두 번 명절에는 명확하게 인지하게 된다. 명절노동이 힘든 가족문화도 아니고, 부모님의 생신이나 기타의 가족행사와 달리 명절만 되면 호흡이 가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시가에 모이면 가족들은 늘 어릴 때의 추억을 이야기 한다. 한 번도 뵙지 못한 아버님의 이야기, 캐릭터 다양한 다섯 형제들이 서로 겪었던 에피소드를 마치 경연장처럼 늘어놓으며 웃는데, 필자가 시가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시간은 바로 그 때이다. 기억과 이야기에서 소외되는 공간과 시간을 제사, 기억을 중심으로 모인 명절에서 아주 낯설게 경험한다. 그런데 시가 사람들은 한두 번도 아니고 필자가 다 외울 정도로 모일 때마다 읊어대는 이야기를 반복재생하면서 즐거워한다. 마치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애국가를 부르며 우리는 하나라고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단일한 이야기를 공유하며 단일하지 않은 가족정체성을 하나라고 우기는듯하다.

 어떤 기억을 공유하는지가 공동체에 있어서는 중요하다. 과거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라는 현재의 공동체는 미래와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

 힘든 가족사에도 불구하고 형제자매들이 서로 의지하며 겪었던 기억의 공유는 현재를 살아가는 따로따로의 가족, 다양한 사회적 위치를 지닌 저마다의 가족에게 삶을 살아가는 큰 힘이 될 수도 있겠다.

 명절에 지내는 제사도 조상을 기억하며 잊지 말자고 지내는 것이고, 대를 이어 가족의 기억을 이어가자는 것이 아닐까. 먼저 간 사람들을 애도하고 기억하고 연대하는 일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이 없는 며느리가 기억의 정점에 있는 제사를 지내려니 삐걱거리는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명절에 행해지는 조상 제사는 대부분 남편과 아버지 집안의 조상이다. 여전히 조상의 범주에 따라서 효의 우선 대상은 남편과 아버지 집안으로 설정되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에도 명절의 그림은 시가(얼마 전까지 바른 표현은 시댁이었다)의 제사로 대표되면서. 여유롭게 즐기는 남자 세계, 그리고 온갖 명절 음식과 차례 음식을 마련하느라 '명절병'까지 앓으면서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 여자 세계로 분류된다. 거기서 정상가족에 들어가지 못한 비혼자, 취업준비생, 무자녀가족 들은 2등 가족의 자리로 몰린다. 그들은 가족에 의해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규정되며, 가족의 의미와 평안을 부정하는 사람들로 낙인찍힌다.

 보편적 명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가족이라도 가족 내에서의 위치, 성별이나 나이, 또는 사회적 위치에 따라 명절은 각기 다른 의미와 기억을 가지게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가족 구성원들이 위로를 받고자 함께 모이는 명절이라면, 서로의 삶을 다독이고 기억을 재구성해야한다. 그리 쉽지 않은 삶의 길을 먼저가신 부모에 대한 소박한 기억을 소환하고, 함께 기념할 수 있는 애도의 자리, 기억의 자리, 연대의 자리가 필요하다. 어쩌면 그 제사의 자리가 여전히 힘들게 살아가는 벌거벗은 현재의 우리들에게 치유와 화해의 자리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새로운 제사의 자리에는 그 기억을 마음 다해 기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소박하고 따뜻하게 준비하면 될 일이다. 기억에 공감하지 못하는 며느리들의 의무적인 노동으로 행사하는 기념의 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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