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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대숲으로 바람이 지나간다. 와스락 소리와 함께 대나무 줄기가 일제히 기울어진다. 해거름 그것을 보노라니 망연히 수수롭다. 지금은 저렇게 우거졌으되 줄기가 어우러진 것은 불과 4년 남짓 일이다. 불현듯 모소대나무가 생각난다. 씨앗을 뿌리고 뒤미처 싹이 나는 것은 보통의 나무와 똑같다. 하지만 그 싹은 4년이 되어도 3㎝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타 지방 사람들은 모를 일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지만 5년째부터는 하루 50㎝씩 자라고 6주가 되면서 무려 15m로 뻗어나간다.

 문득 떠오르는 모소대나무의 하늘. 당연히 싱그러운 바람과 따스한 볕이 간절했을 것이다. 얼른 싹을 틔워 잎을 새기고 싶었겠지만 우선은 뿌리를 넓히면서 기다렸다. 하늘을 이고 선 채 허공을 재고 그늘을 일궈 나갔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처럼 푸르렀을 것이다. 수많은 날 푸른 하늘과 따스운 볕을 그리며 뿌리를 늘려 왔기에 땅속에서의 암흑을 견뎠을 테지.

 보통의 대나무 역시 4년 5년이면 제법 울창해지기는 한다. 싹을 틔우고 4년을 자라든 오랜 날 뿌리를 넓히고 짧은 시일 자라든 마찬가지였으나 그래서 나무의 하늘이 더 푸른 것은 아닌지. 4년을 하루같이 견딘 것은 푸른 하늘에의 염원이었던 것. 다달이 해마다 뿌리심을 다진 끝에 그제야 싹을 틔우던 모종의 나무.

 우리도 소망의 씨앗을 뿌린다. 모소대나무처럼 4년이 되어도 싹이 트지 않을 수 있지만 대나무조차 오래 기다리면서 싹을 틔울 줄 안다. 절망 속에서도 묵묵히 뿌리를 내리고 그 다음 줄기가 뻗는 것은 잠깐이었다. 캄캄한 땅속에서도 뿌리를 늘리고 내일을 꿈꾸는, 바로 그 한 살이에서 희망을 차출해 온다면 사는 게 좀은 수월할 텐데. 고통과 절망 속에서 일군 뿌리는 최고 넓은 영역을 자랑할 것이므로.

 농부는 또 4년씩이나 기다렸다. 말이 4년이지, 그것은 뿌린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오랜 날이다. 나중에야 그 생태를 알았을지언정 처음에는 그랬을 거다. 그러던 중 뾰조록 돋아난 싹을 본 것일까. 오래 전 뿌린 씨앗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나마 묵어서 죽었으려니 했다가 어느 날 부쩍 부쩍 자라는 걸 보고는 무릎을 쳤을 테지.

 그렇게 자란 탓인지 모소대나무 숲은 폭풍에도 멀쩡하고 가물어도 시들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지진이 날 때 대나무밭으로 피한다는 말을 들었다. 뿌리는 굵지 않아도 얼마나 단단히 얽혀 있는지 다른 곳은 땅이 꺼져도 거기는 끄떡없다고 한다. 잎만 무성한 채 뿌리가 약하면 작은 바람에도 넘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싹을 틔우기 전부터 구축해 온 뿌리심 때문이다. 나무의 4년은 하늘 높이 뻗어나가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묵묵히, 푸른 하늘을 꿈꾸는 한 그루 나무처럼 우리 철학도 기다릴 동안 형성된다.

 아무튼 드물게 어기찬 나무다. 마음이 들썽할 때는 촘촘 푸른 잎을 그려보곤 했기에. 나름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도 만족스럽지 않을 때는 땅 속 깊이, 더 깊이 뻗는 중이라고 생각을 바꾼다. 싹을 틔우기 전에 충분히 뿌리를 넓히고 자양분을 축적해 두는 나무. 결과가 없을 때는 기다려야 하리. 지혜로운 사람도 숙이고 성찰하면서 자란다. 모소대나무의 하늘은 땅속에서 기다려 온 만큼 푸르다. 암흑 속에서라야 별이 빛나듯 꿈도 어려움을 극복할 때 빛난다. 꿈은 높은 곳을 바라보는 거지만 묵묵히 참고 내려다볼 때 이뤄지기도 한다.

 나무가 일구어낸 꿈 역시 하늘로 이어졌을까. 어둡고 축축해도 나무에게는 최고 아름다운 꿈의 영역이었다. 눈감으면, 당신은 지금 깊은 뿌리를 내리는 중이었다고 하는 메시지. 어떤 경우든 기다리고 희망을 가지라는 뜻. 하늘 높이 치솟은 초록과 대쪽 같은 기상은 하루아침 된 게 아니다. 농부도 농부지만 나무 또한 기다릴 줄 알았다. 모소대나무의 하늘은 오랜 날 참아온 끝에 더욱 푸르렀다는 사실까지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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