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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9.03 17:15:32
  • 최종수정2018.09.03 17:15:32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옛날 초가지붕 위에 누렇게 익은 박은 풍요의 상징이었다. 추수하는 가을철의 풍경으로 지금엔 볼 수 없지만 식물원, 축제장에 가서야 기껏 볼 수 있는 낭만의 소품이 되었다.

동양의 음식으로 불리는 박은 삶아 말려서 바가지를 만들고 속은 탕류에 사용한다. 연포탕에는 박이 들어가야 제 맛이라 여긴다. 박나물(匏心菜)은 영글어가는 박의 속살로 만든 음식이다. 또 여물지 않는 박의 속을 파내 한 뼘 크기로 썰어 말린 반찬거리를 '박고지(乾瓢)'라 한다. 판소리 '흥부가'에는 흥부 내외가 박을 타면서 "박 속이랑 끓여 먹고 바가지는 부잣집에 팔자"는 사설 대목이 나온다. 이처럼 박은 우리 민족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식재료이다.

한국인의 가을 밥상을 채우는 박나물은 삼월삼짇날 강남 갔던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로부터 탄생한 이야기다. '흥부전'에서 박은 금은보화가 가득한 '행운의 그릇'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흥부전'은 형제간의 우애와 권선징악, 빈부격차 현실의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다. 박의 딱딱한 겉껍질은 바가지로 쓰지만, 연하고 뽀얀 속살로 가득 차 있는 박속(匏心)은 곤궁하던 시절엔 식용으로 유용했던 구황작물이다.

박은 '포(匏)'라 처음 기록되었다. 기원전 450년경 공자가 편찬한 '논어'에는 공자가 "내 어찌 쓴 오이나 박으로 한 곳에 머물겠느냐!(吾豈匏瓜也哉) 어찌 외줄기에 매달려 먹지 못하는 박이 되리오?(焉能繫而不食)"라 말했다. 그 후 '포과(匏瓜)'는 공자의 상징으로, 사대부들이 조정에 출사하는 상징으로 여겼다. 또 '시경'에는 "박잎이 펄럭펄럭 나부끼니 잎을 따서 삶아 먹고"라 했다.

중국 진나라 말기의 한자사전인 '이아'에는 "박속 안에 있는 씨는 치아처럼 열 지어 있고 길어서 호서(瓠犀)라고 일컫는다."고 했다. 후한 말기 유희의 '석명'에는 "호축(瓠畜)은 박 껍질을 포(脯)로 만들어 쌓아 둔 것으로서 겨울철을 기다려 먹을거리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진나라 육기는 "박잎은 어릴 때에는 국 끓이거나 데치면 맛이 아주 좋다"고 하며,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는 "진귀한 박을 그 누가 먹지 않겠는가마는 배가 부르면 일찌감치 수저 놓고 물러 쉬어야 한다네."라며 평소의 채식과 소식을 강조했다.

삼국시대 이전에 전래된 박은 '삼국사기'에는 "진한 사람들은 박(瓠)을 '박(朴)'이라 부르는데 처음에 큰 알이 마치 박과 같았던 까닭에 박을 성으로 정했다."고 처음 기록하였다. 고려시대까지는 포과, 호과(瓠瓜) 등으로 기록되었다가 조선 세종 때 집현전 학사와 의관들이 편찬한 '의방유취'에 박을 호(瓠)라 지정하여 적었다.

박의 꽃(匏花)은 주로 달밤에 꽃을 피워서인지 '달에서 온 미인(月下美人)'이란 애칭도 갖고 있다. 단풍과 추수 등과 같이 가을밤의 달도 가을을 상징한다. 중국 청나라 때의 장조는 '유몽영'의 '월하미인'이란 시로, 조선 후기의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이란 풍속화가 유명하다. 실학자 박지원은 '연암집'의 '새벽길(曉行)'이란 시에서 '별 같이 반짝이는 박꽃'이라 표현했다.

조선 말기의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영가' '팔월령'에서 추석 세식으로 꼽은 박 음식은 쌀뜨물박나물 볶음과 박나물국, 박섞박지, 박잎말이, 박잎전 등 가을철에만 먹을 수 있는 풍성한 밥상과 함께 겨울철 먹을거리로 박고지, 박정과, 박고지떡 등 있다. 궁중요리에서 의식동원(醫食同源)의 표본이었던 박고지는 궁중요리의 열아홉 가지 탕(湯) 등에 모두 들어가던 식재료였다. 박의 하얀 속살에서 울어난 담백한 맛이 잘 어울리는데, 송이버섯과 잘 어울리고 옥색이 감도는 박나물 볶음은 산간지방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이다.

오늘날 흥부놀부 설화에서 전하는 박씨의 전설은 모두 사라졌지만, 찬이슬이 맺히는 절기인 한로를 지나면 "제비는 작아도 강남 간다."고 하듯이 풍년과 행운이 가득한 내년을 또 다시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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