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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수필가, 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왜 죽였냐구요? 그냥 죽였어요. 배고플 때 밥 먹는 것처럼 사람 죽이고 싶으니 그냥 죽인 거죠. 우린 그런 미친놈들과 함께 살고 있는 거구요." 목격자에 나오는 대사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벌어진 묻지 마 살인 사건. 그 현장을 목격하고도 보복이 두려워서 눈 감아 버리는 사람들. 그리고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봐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입주민들. 평범한 사람들이 살인현장을 목격하고 대처하는 이야기를 쫄깃하게 그려낸 스릴러다. 그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도 가고 공감이 가서 맘이 아팠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그렇게 밖에 돌아갈 수 없는 사회 현실이 나을 불편하게 했다.

과연 그 누가 그 사람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그런 상황에 내 몰린다면 어쩌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지 모른다. 내가 만약 사건을 목격했다면 신고를 했을까. 불 켜진 우리 아파트 창문 층수를 범인에 세고 있는 상황에서도 과감히 공익을 위해 전화기를 들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이후에 나와 가족에게 닥칠 후 폭풍에 대해서도 정의라는 이름 아래 담담하게 감내할 수 있었을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정의를 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여러 가지 여건을 감안한다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문득 악의 평범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악은 특별한 사람들에게서만 발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한 표 던진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도 항상 악은 존재한다. 우리가 우리 몸속에 암 인자를 늘 함께 안고 사는 것처럼. 그것은 처한 상황에 따라 발현될 수도 있고 소진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스 친위대 중령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를 받은 전범이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고력의 결여라기보다는 그 자신이 처한 상황과 직무에 대한 책무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의 처지에서는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조국과 안일을 위해서 이기적이고 야만적인 행위를 행한 것은 아닐까. 굳이 아돌프 아이히만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그런 사실들과 마주친다. 아니 그런 나와 수시로 마주선다. 불의라는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눈을 감는 이기적인 나를 만난다.

몇 년 전 근무했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운동장 놀이터 벤치에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두 아이가 서로 부등켜 안고 있었다. 한참을 그 아이들을 주시하다가 그들에게 향했다. 교복차림으로 남의 눈을 의식하지도 않고 학교에서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는 아이들에게 충고를 해주려던 요량이었다. 문을 열고나서는 나를 동료교사가 간곡히 붙잡았다. "선생님 보복 당해요. 그냥 놔두세요. 요즘 애들 무서워요."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그냥 돌아섰다. 몇 년이 지났지만 운동장의 알록달록한 놀이기구를 볼 때면 그 일이 떠오르곤 했다. 교육자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 못한 자책감이 아직도 나를 누르고 있다.

주인공 상훈도 사건을 목격하지만 침묵을 선택한다. 어렵게 장만해서 이사 온 아파트다. 가족들은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안정되어 가고 있다.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신고를 한다면 범인은 잡을 수 있겠지만 자신의 단란한 가정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 그는 말을 아낀다. 그리고 죄책감과 공포 속에서 갈등한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이론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눈 감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개인의 안락과 사회적인 정의 중 무엇이 우선일까. 그것은 개인의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떤가. 딜레마에 빠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가 공공의 선과 개인의 요구도 함께 수용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길 바랄 뿐이다. 사는 것이, 주어진 생을 잘 살아내는 것이 참 어렵다고 어둠이 귓가에 속삭인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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