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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섭

청주시 공보관실 팀장

고즈넉이 구비치는 능선 너머로 새벽달이 구름 속에 몸을 가린다. 자연의 미는 능선의 미라고 했던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속리산자락의 능선은 보면 볼수록 내 누이의 속눈썹처럼 깊고 부드럽다. 구비치 듯 흘러서 유유히 뻗어나간 천왕봉을 바라보니 마음의 번뇌와 시름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그래서 속리산은 멀리서 보는 풍경이 아름답다.

아득한 옛날부터 법주사를 찾는 사람들이 숱하게 걸었던 길. 지금 나는 새벽달을 친구삼아 법주사 오리숲길을 걷고 있다. 대웅보전 앞에 수줍은 듯 놓여있는 석등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숲길에는 오래된 소나무와 전나무, 참나무가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이루며 길손을 반갑게 맞아준다. 먹을 것을 찾던 다람쥐도 일손을 잠시 놓은 채 법주사를 향해 두 손 모아 합장을 하고 있다. 새벽부터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시샘이라도 하듯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마파람이 숲속의 나뭇잎을 스치듯 지나간다. 해마다 걷는 길이지만 철따라 변하는 풍경 때문인지 올 때마다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수정교를 지나 금강문을 들어서니 호서제일 가람답게 팔상전과 대웅보전, 금동미륵대불이 눈에 들어온다. 박물관이 따로 없다. 문장대와 관음봉을 배경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사찰의 공간이 단아하다. 비움과 충만함의 조화로움이 이런 것일까. 풍수에 어두운 내가 봐도 장차 중생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실 미륵부처님을 품고도 남을만한 넉넉함이 있다. 저 멀리 휘감기며 나부끼는 승복을 입고 허허롭게 걸어가는 시자스님의 뒷모습도 넉넉해 보인다.

팔상전을 돌아 대웅보전으로 향하는 길, 초라한 전각 안에 석등 하나가 놓여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쌍사자석등 이다. 누가 만들어 놓았을까. 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앞발과 주둥이로 화사석(火舍石)을 받쳐 들고 서있는 모습이 범상치가 않다. 천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머리의 갈기와 다리의 근육은 아직도 살아있어 금방이라도 포효하며 튀어나올 것만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인고의 세월을 버텨낸 훈장 같은 상처들이 온 몸에 가득하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쌍사자석등의 빛바랜 자태가 금동미륵대불의 화려함과 대비되어 더욱 고아(古雅)하다. 화사석을 받쳐 들고 서있는 저 사자 한 쌍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걸까. 염불하는 법승과 참선하는 선승의 모습이라고도 하고, 사자의 암놈과 수놈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도 한다. 화사석의 등불이 부처님의 진리를 의미하는 거라면 등불을 받쳐 든 저 사자의 모습은 부처님의 말씀이 머무는 절, 법주사를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쌍사자석등을 뒤로하고 조금 더 걷다보면 대웅보전 법당 앞에 사천왕석등이 무구(無垢)하게 서있다. 소박함이 묻어나는 이 석등은 간결하고 속됨이 없어서 좋다. 화사석을 넌지시 깔고 앉은 옥계석의 날렵함도 아름답다. 법당 앞에 조용히 어둠이 내리면 저 석등에 밝혀진 불빛들이 화창(火窓)밖으로 새어나와 댓돌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스님의 하얀 고무신을 은은하게 비췄겠지. 문틈사이로 흘러나오는 스님의 낭랑한 독경소리는 삶에 지친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이 되었으리. 추운 겨울날 스님의 독경소리에 맞춰 두 손 호호 불어가며 무릎이 시리도록 백팔 배를 올리시던 할머니의 얼굴이 법당 앞 창살문에 그림자 되어 나타난다. 아직은 이른 새벽, 쌍사자석등도 사천왕석등도 잠들어 있다. 지금 나는 두 석등을 바라보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멋스러워지는 것들의 깊이를 새삼 느낀다.

속세를 떠난 산, 속리산은 초록으로 온 몸을 물들일 듯 푸르다. 저 멀리 배롱나무에 붉게 물든 백일홍이 화사하다. 법당 앞 보리수나무 벤치에 앉아 산행의 피곤함도 인생의 고달픔도 모두 놓아버리고 여름이 지나가는 것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 속에 오랜 세월 이 자리를 지켜온 법주사의 역사도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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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