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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은영

충북도 바이오정책과장

토마토 한바구니, 가지 2개, 호박 1개, 그리고 고추 한 줌.

어디 전통시장에라도 다녀온 듯한 품목일지 모르겠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10분 남짓한 시간동안 집 뒤 텃밭에서 거둬들인 오늘의 수확물이다. 이것들로 오늘은 뭘 해먹을지 머리를 굴리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휴가를 맞아 시골 할머니댁(분명 할아버지의 소유였는데 왜 할머니댁이라고 불렀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에 왔다. 조부모님 두 분 모두 안 계시지만, 친척들이 수시로 오가는 통에 빈 집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게다가 집 뒤 텃밭에는 손바닥만 한 면적에 10가지는 족히 되는 채소들이 옹기종기 자라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모두 젊은 태양 아래 춤을 춥시다. …"

언제 처음 나왔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클론의 '도시탈출' 노래가 자동으로 입가에 흘러나온다. 어릴 적 튜브를 타고 온 몸이 푹 젖게 놀던 계곡에서는 너른 바위에 누워 잠자리 날갯짓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계곡물에 발을 첨벙거리고만 있어도 '행복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며칠 있는 동안 맛있는 빵집도 찾았고, 할아버지 손을 잡고 들어가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둘'을 외치던 다방은 없어졌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킬 수 있는 카페도 발견했다. 잠깐의 휴가지만 이런 생활이 일상이 되어도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봄 영화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를 봤다. 임순례 감독의 한국판에 이어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과 '리틀 포레스트2 : 겨울과 봄'까지 연이어 찾아보았다. 세 편 모두 팍팍한 도시에서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을 뒤로 하고 잠시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직접 땀 흘려 키운 농작물로 삼시 세끼를 만들어 먹으며 사계절을 보낸다. 시골생활의 평범한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주인공의 여자친구와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남자친구도 있다. 고향에서, 특히 시골에서 보내는 하루하루에 대해 세 청춘은 모두 다르게 느낀다.

세 영화 모두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음식들로 눈이 쏠리지만 그 와중에 몇 가지 마음에 콕 박히는 대사들이 있어 적어본다.

"이놈의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계속 자라난다. 걱정도 자꾸 다시 자라난다."

"가장 중요한 일을 외면하고 그 때 그 때 열심히 사는 척 고민으로 얼버무리고 있다."

정작 나에게 중요한 일은 고민을 회피하면서 다른 일로 바쁘게, 때로는 어물쩍 시간을 보내는 나에 대한 질책 같아 뜨끔했다. 영화를 보는 짧은 시간동안, 또 여름휴가 며칠 잠깐 멈춰보니 정말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나에게 중요한 일에 대한 고민은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동아시아연구원에서 발표한 '2016년 한국인 정체성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한국인의 의식구조에서 '경제적 풍요와 사회적 성공'보다 '행복한 가정'이나 '건강과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어쩌면 좀 더 자신에게로 돌아오고자, 또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근원적인 욕구를 보여주는구나 싶다. 하지만 의식구조와 다르게 현실에서는 그 중요한 '행복한 가정'이나 '건강' 등에 얼마나 매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적어도 무언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또 그 너머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잠시 '쉼표'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라고 외쳐대던 카드회사 광고 카피가 오랜만 떠오른다. 휴가철이 막바지에 달하고 있다. 아직 일상에서 멈춰 서지 않은 분들은 지금이 그 때이다.

참, 나는 결국 잡초와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휴가 중 며칠이었지만 아무리 뽑아도 끝이 보이지 않고, 맹렬한 햇볕을 피해봤지만 결국은 그늘도 포기하고 집 안으로 피신했다.

시골생활이 일상이 되어도 괜찮겠다는 나의 안일한 생각은 잠깐의 일탈이었나 보다. 그래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지금이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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