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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수필가, 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같은 물을 마셔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든다 했던가. 같은 시대에 같은 하늘 아래 사는 데 생각의 깊이가 어쩌면 그렇게 다른지. 내가 작은 웅덩이라면 그는 깊은 우물이다. 내 생각의 물은 햇살만 조금 비춰도 바짝 말라버리는데, 그는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깊이를 가졌다. 

며칠 전 동인들의 모임이 있었다. 모임이 다가오자 집 안팎을 청소했다. 나는 거실과 방을 청소하고 남편은 바깥을 정리했다. 구석구석 보이지 않던 생활의 때가 왜 그리 커다랗게 확대돼 보이는지.

싱크대를 닦고 나면 창틀의 먼지가 보이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나면 계단의 말라버린 발자국이 보였다.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이러다가는 청소하다 판이 날 것 같아서 변기 소독을 끝으로 실내 정리는 눈을 감기로 했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한 여름의 열기가 훅 날아들어 몸을 감싸 안았다. 내가 발을 들이자 강아지랑 돼지도 내 뒤를 따른다. 강아지는 소나무 앞에 멈춰 서서 오줌을 누고 꿀꿀이는 화단으로 들어가 똥을 싼다. 마당으로 들어오면 어김없이 소변과 대변을 보는 그들이 기특하다. 동물들이 마당에서 실례를 하고 흙을 파고 노는 동안 나는 개울물 소리에게 인사하고, 지천에 펼쳐져 있는 새 소리를 귀에 담고, 한여름의 뜨거운 허공에게 눈을 떼어준다. 그리고 땅위 풀에게도 발 인사를 한다. 풀들은 온몸이 축 늘어져 소리 없이 초록빛 웃음을 흘리고 있다. 

남편은 널 부러진 공구들은 컨테이너에 넣고, 지저분했던 장작더미도 말끔하게 쌓아놓았다. 그리고 닭장에도 쌀겨를 새로 깔아주어 한결 안락해 보였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정리정돈을 해놓은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돌아서려 할 때였다. 반송이 한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갈색 잎을 뾰족하게 세우고 마당 구석에서 박제가 돼있었다. 거슬렸다. 잘랐으면 좋겠다고 하자 손님 오기 전날 까지는 잘라 준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이 어제로 이송됐다. 그런데 여전히 반송은 붉은 잎을 세워 내 눈을 찌르고 있다.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죽은 나무를 마당에 세워 둔 채로 손님을 치르게 된 것이다. 나는 출근한 사람에게 전화를 넣었다. 남편은 미안하다고 했지만 맘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시간은 다되고 동인들의 차가 줄지어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을. 

차를 우려 테라스에 차렸다. 금준미와 다즐링 향이 공기 속에 퍼졌다. 그런데 차를 마시던 그가 갑자기 눈을 반짝였다. "희숙아~ 저 나무에 새 앉혀 줄까?" 그는 우리 동인의 리더로 나보다 열 댓 살이 많은 사람이다. 그의 말뜻을 이해 못한 나는 "나무가 죽어서 보기 흉하죠? 남편한테 자르라고 했는데 여직 안 잘랐네요."라며 남편을 탓했다. 그러자 그가 "다섯 마리 앉히면 되겠지?"라고 또 묻는다. 나는 의아해 하며 "어떻게요?"라고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는 일어서더니 낫과 커터 칼과 니퍼와 오공 본드를 찾는다.

난 영문을 몰랐지만 그가 시키는 대로 공구를 갖다 줬다. 그는 낫을 들고 죽은 반송의 가지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가지로 새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새를 나무 가지에 붙였다. 순식간에 솟대가 완성됐다. 죽은 나무는 다섯 마리 새를 단 멋진 작품이 됐다.

똑같은 사물을 보고도 어떤 이는 폐기처분을 생각하고 어떤 이는 재생산을 생각한다.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오늘 하루 일을 이야기 하니 자기가 다 생각이 있어서 나무를 안 자른 거라고 허풍을 친다. 내가 눈을 하얗게 흘기자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느냐며 허풍의 수위를 높인다.

식은 시골의 밤바람이 몸을 감는다. 밤의 살갗을 파고들며 얕은 내 사유의 숲을 걸어본다. 이제는 깊어지자고 숲에 발소리를 묻으며 혼자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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