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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섭

청주시 공보관실 팀장

아버지가 급성폐렴으로 입원하신지 한 달이 지났다. 언제 퇴원을 할지 기약도 없다. 입원 하던 날, 조금만 더 늦었어도 큰일 났을 거라고 오래 전부터 아버지를 치료해 오신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큰일 났을 거'라는 의사선생님의 저 말씀이 무슨 뜻인가? 조금만 늦었어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거란 말로 들렸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었단 말인가. 

아버지가 천식으로 고생을 하신지도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평소에도 가끔씩 산소마스크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호흡장애를 겪곤 하셨다. 천식환자들은 걷는 걸 힘들어 한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올라 오래 걸을 수가 없다. 담배공장에 다니면서 사십년을 넘게 피워 오신 담배를 끊었는데도 증상에는 별다른 차도가 없다. 그래서였을까. 언제부턴가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먼 길 떠나는 일은 엄두도 못 내고 살았다.

올 해로 아버지가 팔순이 되셨다. 의미 있는 일을 해드리고 싶은데 무엇을 해야 하나. 남들 흔히 갔다 오는 해외는 고사하고 제주도 한번 못가보신 분 아니던가. 더 늦기 전에 아버지를 모시고 제주도를 다녀오기로 했다. 출발전날, 아버지는 살아오신 세월을 가방에 담으며 조용히 여행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런데 가는 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평소 아버지는 '벤토린'이라는 약품을 달고 사신다. 이 약품은 기도를 확장시켜 호흡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천식환자를 도와주는 휴대용 흡입약품이다. 문제는 이것이 비행기 반입금지 물품이었다. 이 약이 없으면 아버지는 한나절도 못가서 호흡곤란을 겪으실 텐데…. 허탈한 마음에 시선을 돌리니 저 멀리서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애비야. 무슨 일 있는 거니?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아버지의 음성이 허공을 타고 내 귓전에 들려오는 듯했다.

항공사 관계자를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했다. 한참을 듣고 난 그 분은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서약서를 쓰라고 했다. 비행기 안에서 일어나는 아버지의 모든 일은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서약서를 쓰고 나서야 우리 부자는 제주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처음 맞는 여행길, 서귀포 약천사로 향했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범종루에 올라 법고를 두드리는 스님의 미소가 세속영화 다 버리고 바람처럼 살다 가신 부처님의 미소를 닮았다. 법당 안에 들어서니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 앞에 절을 올리고 있다. 무슨 소원을 저렇게 간절히 빌고 있을까. 연좌위에 앉아계신 부처님을 바라보니 "맑고 깨끗한 내 마음이 부처님 마음"이라고 가만히 나에게 일러주는 듯했다. 아버지의 건강을 발원하며 나도 부처님께 두 손 모아 절을 올렸다. 다소곳이 법당 문을 나서니 저 멀리서 아버지가 웃고 계신다. 소년처럼 환하게 웃으시는 저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숙소로 돌아오는 길, 우리 부자에게 좋은 추억이라도 선물하려는 듯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지는 해가 천상의 비경을 만들어 놓았다.

둘째 날부터 아버지가 힘들어 하신다. 얼굴이 창백하고 말 수가 적어지셨다. 산소마스크 없이 하루를 견디기가 힘드셨던 모양이다. 계획했던 일정은 쓸모가 없어졌다. 아버지와 나는 해안가 도로를 무작정 달렸다. 청정한 하늘과 에머랄드빛 푸른 바다가 팔 벌려 우리를 품어주었다. "애비야 고맙다. 이런 구경을 시켜줘서…."

돌아오는 날, 비행기 안에서 아버지가 잠이 드셨다.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니 참 많이도 늙으셨다. 한 울타리 안에서 물같이 구름같이 정을 섞으며 살았던 어린 시절 그때가 그리워진다. 그 날 이후 아버지는 병원에 계신다. 하루는 병상에 누워서 평소 친분을 나누셨던 분들의 안부를 물으셨다. 늙어서 외로운 건 아파서가 아니라 살아온 추억들이 생각나는 것이리라. 휘영청 뜬 보름달이 창문 밖에 걸려있다. 깊숙이 들어 마셔 '휴~우'하고 내뿜는 아버지의 날숨소리가 병실 안의 적막을 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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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