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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청주시 팀장·수필가

매미가 쩌렁쩌렁 울던 이맘때면 짓궂은 친구들이 서리해 온 참외와 수박을 개울에 풍덩 담가놓고 멱 감고 놀던 추억이 떠오른다. 이웃 간에 밥을 나눠 먹고 서로 부족함을 채워주던 정이 많던 시절이었다. 종이도 귀해서 신문지는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생선가게에서도 푸줏간에서도 고기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손님 손에 건네주곤 했다. 신문지는 벽지로도 쓰였고 화장실에서도 요긴한 존재였다. 그만큼 어려운 생활이었으니 책은 더없이 값진 귀한 소장품이었다. 친구들과 책을 돌려가며 읽었고, 시험기간이면 전과가 있는 친구 집에 모여 둘러앉아 같이 공부도 했었다. 어쩌다 책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어른들은 "책 도둑은 도둑이 아녀, 얼마나 읽고 싶으면 갖고 갔을까"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소리를 듣고 자라서인지, 지금도 책 도둑에게는 아량이 생기곤 한다. 살짝 집어간 책에서 감명을 받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연일 폭염이 내리쬐는 요즈음, 오늘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부터 햇살이 따갑다. 더위를 이겨내는 방법 중 으뜸은 독서 삼매경이 아닐까? 도서관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뒤뚱뒤뚱 걸어오는 어린아이의 얼굴이 해맑다. 아동 열람실엔 아이들의 신발이 빼곡하다. 책을 읽어주는 자원봉사자의 모습도 보인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모습은 천사의 모습이다. 로비 테이블에는 삼삼오오 둘러앉은 젊은이들이 책을 펴놓고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이어폰을 꽂고 홀로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도 눈에 뜨인다. 어린아이에서 노인까지 붐비는 도서관엔 생명력이 넘친다.

점심을 먹고 나니, 사람들 속에서 책을 읽는 여유를 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카페처럼 새롭게 단장한 아늑한 공간인 로비로 향했다. 책장을 몇 장 넘기지도 못했는데 식곤증이 밀려온다. 사람들이 빠르게 바삐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서가에 가득하게 꽂혀있던 책들이 모두 사라졌다. 아동열람실에서 배를 쭉 깔고 누워 책을 읽던 아이도, 그림책을 읽어주던 천사의 모습도 보이질 않는다. 로비를 두리번 거려도 대화를 나누던 젊은이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그 많던 책들이 어디로 갔을까? 텅 빈 서가를 바라보며, 도대체 누가 다 훔쳐간 건가? 놀라움과 걱정에 한숨만 나왔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녀"라고 했는데. "이를 어쩌나, 어떻게 빈 서가를 채우지"하며 발만 동동 굴렀다. 또다시 사람들의 발소리가 크게 들려오며, "옆에 앉아도 될까요?"라고 묻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후~" 그새 단 꿈을 꾸었다. 오후가 되니, 점심을 먹고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내뿜는 열기에 사람들의 얼굴은 발갛게 익고 흘리는 굵은 땀은 비 오듯 한다. 무더위에 심신이 피곤하고 짜증도 날 듯도 하련만.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은 더위를 잊은 듯 편안하고 여유롭다. 독서가 주는 즐거움에 푹 빠진듯하다.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시원한 바닷물에 풍덩! 수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을 테고. 매서운 추위와 사투를 벌이는 남극 탐험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도깨비방망이를 두드리며 신나는 동화 속 여행도 즐기고.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마다 느꼈던 뭉클함과 뿌듯함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책 속에 답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올여름 휴가에는 책과 함께, 더위도 이겨내고 인생의 깊이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백이전을 1억 1만 3천 번을 읽은 조선시대 독서광 "백곡(栢谷) 김득신"은 아닐지라도. 손에 스마트폰이 아닌, 책 한 권 쥐고 사는 삶이길. 입맛을 돋우는 "밥도둑"도 좋지만, 마음의 양식을 키우는 "책도둑"을 많이 만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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