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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7.23 16:28:19
  • 최종수정2018.07.23 16:28:19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연(蓮)은 고대 중국과 인도의 주요한 식량과 약초였다. 지금은 한약재 등 무결점의 식재료로 쓰인다. 여름 꽃을 대표하는 연꽃은 연잎차로, 뿌리는 연근음식으로 연잎파리는 찻잎, 연잎밥을 만들 때 쓴다. 모양이 도토리와 엇비슷한 열매는 삼각뿔 모양의 꽃 대궁에 작은 것은 29개 안팎으로 보통 33~35개의 물뿌리개 구멍처럼 생긴 곳에 담겨 있다. 벌집처럼 뚫려 있는 홀수의 구멍마다 들어 찬 씨는 검게 익는데 '연밥(蓮實)'이라 해 날로 먹기도 한다.

5천 년 전부터 식용해온 연은 인도 중북부가 원산지로 알려진다. 기원전 1200년경 편찬된 인도 아리아인의 경전인'리그베다'에는 연꽃을 우주만물 창조주의 상징으로 '지구를 떠받는 최초의 식물'로 비유했다. 기원전 7~6세기에 편찬된 불교경전 중 '숫타니파타'에는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수행자의 덕목에, 선종의 상징인 연꽃은 "세존께서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니 가섭존자가 그 꽃을 보고 빙그레 미소 지었다.(拈華示衆)"고 해 불교의 상징화가 됐다.

기원전 5세기에 편찬된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기록된 로터스(lotus)는 연을 가리킨다. 연꽃을 신성시해 온 이집트에는 비옥·재생의 상징적 심벌로 여겼다. 기원전 6세기에 공자가 편찬한 '시경'의 '산유부소'에는 "산에는 부소나무, 못 속에는 연꽃이 있다.(山有扶蘇 有荷華)"고 기록했다. 굴원의 서사시 '이소'에는 "마름과 연잎으로 옷 짓고 연꽃을 모아 치마로 입었네."라고 연잎을 하(荷)로 연꽃을 부용(芙蓉)으로 적었다. 후한 때의 '설문해자'에는 "부용이 아직 피지 않은 것을 함담이라 하고, 이미 핀 것을 부용이라 한다."고 적었다. 유희의 '이아'와 이시진의 '본초강목'에는 통칭해서 부거라 했다.

중국 양나라 무황제, 당나라 이백 등을 통해 유명해진 연꽃은 송나라 주무숙의 '애련설', 일명 연시(戀詩)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 채련곡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시에 대한 찬사와 연을 '꽃 가운데 군자'라 해 연꽃의 덕이 갖춰졌다. 송나라 소동파는 "더러운 곳에 피어나되 항상 깨끗하고, 속은 비었으되 밖의 모습은 둥글고, 꽃과 열매가 동시에 맺히니, 이를 일러 세 가지 공덕이라 하네."라 해 연꽃의 세 가지 덕성을 가졌다고 전했다.

중국 도교에서 연꽃은 군자의 꽃, 고고한 선비로 비유된다. 연꽃은 여덟 신선의 한사람인 하선고의 상징물이다. 신선들이 입던 옷은 한나라의 유향이 쓴 '초사'에는 "연잎 옷에 혜초 띠를 매고 갑자기 왔다가 홀연히 떠나네."라 했다. 당나라의 한유는 연근에 대해 "차기는 눈과 서리 같고 달기는 꿀과 같다 할까. 한 조각만 입에 넣어도 고질병이 낫는다네."라고 했다.

삼한시대부터 식용해온 연은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란 노랫말로부터 5세기 고구려 쌍영총벽화 및 6세기 백제 고분벽화 등 석탑, 건물 등에도 문양이 사용됐다. 12세기 송나라 사신은 "고려에는 부처의 꽃인 연꽃을 함부로 꺾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연을 노래하고 그리워하는 연인에 비유했다.

조선 초기의 강희맹은 명나라에서 연씨(蓮子)를 가져와 경기 시흥 관곡지에 심어 최초 재배지로 알려진다. 건국 초기에 조성된 한양의 연지(蓮池)는 장원서가 관장하고 생산되는 연밥 수확물을 궁궐에 진상됐다. 실학자 정약용은 더위를 식힐 8가지 피서법으로 서쪽 연못에서 연꽃구경(西池賞荷)을 꼽았고, 위나라 때부터 유행된 연꽃을 사용해 술 먹는 '벽통음'이란 풍류를 즐겼다. 옛 선비들은 연꽃이 필 때의 소리가 가장 아름답며 '청개화성(聽開花聲)'에 비유했다.

이미 일본에서 검증된 바와 같이 "연꽃 씨는 백 년 지나도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혹여나 전 지구가 오염되더라도 천년 갈 씨앗, 다시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식재료가 바로 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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