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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안 넘어가 그만 먹을 게"

"한입만~ 한입만 더 드세요."

남편과 아들이 실랑이를 한다.

심장조영시술을 마치고 나면 4시간 정도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어야 부작용이 최소화된다는 설명이다. 이어진 금식으로 입 안이 쓰고 텁텁하여 드시기 어려울 텐데 게다가 반뜻하게 누워서 받아넘기라니 힘에 겨워서 거부하는 아버지와 한 수저라도 더 떠 넣으려고 떼쓰듯 매달리는 아들의 모습이 짠하게 다가온다.

먼 기억이 아물거린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우르르 쾅쾅' 무서운 기세로 천둥번개가 몰아쳤다. 방으로 뛰어 들어가 보니 형은 어디 갔는지 방에서 혼자 놀고 있던 6살 작은아이가 파랗게 질려 있었다. 한참 동안 안고 다독여 주자 편안해진 녀석은 내 품에서 빠져나오며 꼬마답지 않은 제안을 해온다.

"엄마, 내가 무서울 땐 엄마가 꼭 지켜 주어야 해."

"그럼, 그러고 말고."

안심한 듯 방그레 웃는 녀석을 보자 난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런데 엄마가 무서울 땐 누가 지켜주지."

녀석은 눈을 깜박이며 나를 바라보더니

"내가 지켜주면 되잖아."라고 한다.

"엄마 우리 서로 지켜주자." 한 수 더 뜬다.

"네가· 나를! 하하하…."

어이없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한참을 웃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났다. 그날의 약속을 염두에 두어서라기보다는 어미의 본능으로 두 아들을 보듬고 살았지 싶다. 때론 지켜준다는 미명으로 속박하기도 했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정직한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횡포를 휘두르는 우를 범하기도 했지만, 지키고 세우려는 노력만은 가상했다.

나의 두 아들도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되고 아빠가 되었다. 그동안도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알게 모르게 제 부모를 지켜주었지만, 이제는 실질적인 보호자로 나선다. 시시콜콜 챙겨주고 당부하고 아예 어린아이 취급을 한다. 젊음이 빠져나가 앙상해진 어깨, 아물거리는 기억력, 달라지는 부모의 모습이 아들들을 철들게 하는 모양이다. 새삼 든든한 지킴이로 서있다.

사랑은 지켜주는 것이라 했던가. 요즈음 부모들의 자식사랑은 눈물겹다. 최고의 학벌, 최고의 직장, 최고의 배우자, 이 모두를 갖추게 하는 게 자식을 지켜주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공부하는 것 말고 다른 가치에 눈 돌릴 틈이 없다. 올해 대학에 들어간 내 손녀는 아직 사과를 깎을 줄 모른다. 시간이 아까워서, 칼이 위험해서 아이의 손에 들게 할 수 없다는 엄마가 내 며느리다. 원래 성품이 여리고 고와서 그런 줄은 알지만, 아이를 지켜주려는 마음이 자칫 과잉보호로 이어져 열린 가능성을 막아 버리면 어쩌나 염려된다.

요즈음은 너나없이 열심히 가르쳐서 학력은 높아졌지만, 어우르며 살아가는 지혜와 상식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해 사회는 날로 어지러워가고 있다. 경제의 성장으로 집은 커졌지만 젊은이들의 가치관 변화로 함께 어우르며 살아갈 식구는 늘어나지 않아서 반려동물로 식구를 삼는 형편이기도 하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에 따라 옳은 것이 틀린 것이 될 수도 있고 틀린 것이 옳은 것이 될 수도 있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모두가 옳은데도 모두가 억울한 세상, 사회적 판단기준을 상실한 우리네 풍경이다.

세기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에 '무릇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라는 구절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내 마음을 지키는 일이었다. 가치관을, 신념을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들을 아끼고 지켜내는 일이 너와 내가 서로를 지켜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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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