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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섭

청주시 공보관실 팀장

미호천 들길을 걸었다. 비 오는 날의 이 길은 언제나 풍경이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모든 것이 여유롭다. 가뭄 속에 단비가 이런 것일까. 메말랐던 땅이 밤새 내린 비를 품어 흙냄새를 토해내고 있다. 텅 빈 들판,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 젊은 남녀 한 쌍이 비를 피해 서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예전부터 버드나무는 이별의 상징이라고 했는데 저 젊은 남녀도 버드나무 아래서 이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바람에 너울거리는 버드나무를 바라보니 문득, 학교 다닐 적 배웠던 홍랑의 시 한수가 떠오른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 자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나이가 든 탓일까. 세월이 흘러 다시 이 시를 뇌어보니 임을 그리워하는 홍랑의 마음이 절절하다. 유교적 관념이 뼛속 깊이 자리했던 그 시절 홍랑이 정절을 바쳐 사랑했던 임은 누구였을까. 조선시대 문장가이자 삼당시인(三唐時人) 고죽 최경창 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함경도에서 북도평사(병마절도사의 부관)의 소임을 다한 고죽이 한양으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임을 보내야 하는 홍랑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한양으로 떠나오는 길,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다. 홍랑은 사무치는 마음에 길가에 늘어진 버들가지를 꺾어 고죽에게 건넸다. 그리고 나를 보듯 봐달라며 애절한 마음을 전했다. 날은 저물고 부슬부슬 비는 내리는데 피할 수 없는 이별 앞에서 두 사람은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지 않았을까.

김소월은 버드나무 아래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아쉬움을 이렇게 노래했다. "실버들을 천만사 늘어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이 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돌아서는 임이야 어이 잡으랴." 떠나가는 임을 붙잡고 싶은데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야만 한다. 임을 잡지 못하면 나는 저물어 가는 저 봄처럼 이별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 끝 어디로든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임이 떠나가면 이 아름다운 봄도 나에게는 황량한 유배지가 될 터인데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실버들만 바람에 흩날린다고 했다. 얼마나 애잔한 사랑인가. 사랑하는 임을 보내야만 하는 소월의 애끓는 심장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나에게도 어렸을 적 버드나무 추억이 있다. 얼굴이 곱고 마음씨도 예쁜 아이가 있었다. 고향 집 바로 밑에 사는 여자아이였다. 부모님이 논밭으로 일을 하러 나가면 우리는 하루 종일 함께 놀았다. 봄이면 들로 산으로 다니면서 나물을 뜯었고, 여름날에는 강변에 나가 멱을 감고 물고기를 잡았다. 귀뚜라미 울어대는 가을날에는 앞마당 멍석위에 벌러덩 드러누워 밤하늘의 별을 하나 둘 세면서 그렇게 놀았다. 고향을 떠나오던 날, 우리는 강변 뜰 언덕에서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수양버들 나무아래 기대어 서서 '잘 가'라며 한참동안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때는 몰랐었는데 돌아보니 순수했던 어린 시절 첫사랑 이었다. 벌써 40년 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잘살고 있겠지. 지금도 고향 길 버드나무를 보면 어린 시절 그 아이가 생각이 난다.

언제부터 버드나무가 이별을 상징하는 나무가 되었을까. 중국 당나라에는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수양버들 가지를 꺾어주며 안녕을 비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큰돈 들이지 않고서도 정성을 표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었기에 그랬던 것은 아닌지.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고 했다. 만나면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어찌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겠는가.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어둠이 걷히면 새벽이 오는 것을….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젊은 남녀가 버드나무 곁을 떠나 저 멀리 걸어가고 있다. 부는 바람에 버들가지가 잎을 힘껏 흔들어 작별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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